제2차 세계대전의 유럽 전선이 히틀러의 자살과 독일의 무조건 항복으로 막을 내린 후, 나치 독일의 파시즘 광기를 초장부터 온몸으로 받아내야 했던 네덜란드는 전쟁의 여파로 전국토가 잿더미가 되고 말았다. 당시 나치 독일은 조선총독부와 비슷한 '네덜란드 국가판무관부'를 세워 수많은 네덜란드인을 탄압했다.
끝내 나치 독일은 패망했으나, 네덜란드는 독일의 옆 동네였던 만큼 전쟁으로 온 국토가 잿더미가 되었고, 이 나라의 미래는 답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구세주가 나타났으니, 바로 미합중국님 되시겠다. 유럽의 공산화를 막고 세계대전으로 잿더미가 된 유럽을 부흥시켜준다는 명목으로 시작된 마셜 플랜.
네덜란드는 전국토가 잿더미가 된 만큼 마셜 플랜의 혜택도 가장 많이 보았다. 액수 자체는 다른 나라에 비해 밀려보이지만, 네덜란드와 다른 유럽 국가들 사이의 국토 면적과 인구수 비율을 생각해 보면 결코 적은 액수를 받은 것이 아니다. 이렇게 지원금을 받고 겨우 살아나기 시작한 네덜란드는 행복하게 치즈나 만들며 풍차를 돌리면서 경제 재건에 힘썼을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았다. 그랬다면 이 글이 쓰여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돈을 받고 좀 살만해지기 시작한 네덜란드는 바로 자기네 식민지 재관리에 들어가기 시작한다. 당시 동남아시아는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군이 들이닥쳤는데, 본국들이 나치 독일과 싸우느라 식민지 관리를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일본군은 무혈 입성을 하게 되었다. 일본군이 패망하게 되자 일종의 권력 공백이 찾아왔다.
당연히 식민지들은 이를 틈타 독립을 시도했고, 기존의 유럽 열강들은 이에 반발했는데, 네덜란드의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도 예외는 아니었다. 인도네시아 독립을 죽어도 인정하기 싫었던 네덜란드는 국토도 아직 복구하지 못한 상황에서 인도네시아를 다시 '침공'하는데, 이것이 바로 인도네시아 재침략전쟁(1945~1949)이다.
네덜란드의 인도네시아에 대한 의지는 '죽어도 못 잃어'였기 때문에, 전쟁 당시 네덜란드 침략군의 숫자는 무려 12만 명에 달했다. 참고로 당시 네덜란드 인구는 고작 천만 명에 불과했다. 나라 자체가 빵빵하게 먹고 살만한 것도 아니고 온 나라가 폐허가 된 상황에서도 식민지 하나 독립시켜주기 싫어서 12만 명이나 되는 군대를 지구 반대편까지 보낸 네덜란드도 참 대단하다면 대단하다.
전쟁이란 게 항상 그렇듯이 곱게 흘러가지 않았다. 인도네시아가 공백이 있었다곤 하나 기본적으로 식민지에 불과했고, 경험이라곤 일본군이 자기네 총알받이로 써먹으려고 가르친 기초 군사교육밖에 없었기 때문에, 인도네시아인들은 독립을 위해 엽총과 죽창까지 동원해서 싸우게 된다. 네덜란드도 이렇게 악에 받은 인도네시아인들을 가만두지 않았고, 민간인 학살과 참혹한 전쟁범죄도 서슴지 않았다.
위의 사진은 당시의 학살을 묘사한 부조상이다. 결국 인도네시아 수뇌부까지 포로로 잡히고 절박한 상황 속에서 미국과 유엔이 개입한다. 미국은 자기네 비싼 돈 들여가며 지원해준 나라가 침략 전쟁을 일으키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결국 네덜란드가 다 이긴 상황에서, 미국이 '그냥 놔줄래, 맞고 놔줄래?'를 시전하자 네덜란드는 울며 겨자 먹기로 독립을 승인하게 되고, 4년간의 전쟁은 인도네시아의 독립으로 끝을 맺는다.
이걸 보면 식민지를 운영한 나라 중에서 정상이었던 나라가 없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재밌는 것은 이렇게 독립한 인도네시아가 자기 국력을 믿고 옆 나라 동티모르를 강제 합병하고 70만 국민 중 1/3을 추방하거나 잔혹하게 학살해버리지만, 그것은 나중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