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전설의 만학도 물리학자 공근식 박사 충청북도 영동군 심천면 출신 공근식 씨가 공부를 시작하게 된 계기
3형제 중 장남이었던 공근식 씨는 고등학교 1학년 시절, 학교를 자퇴하고 17살 무렵부터 부모님과 수박 농사를 함께 짓기 시작했다. 농사를 지은 돈으로 동생 2명은 전부 대학에 보냈다.
아버지가 치매에 걸렸다. 공근식 씨는 동생들 2명이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할 때까지 어머니와 약 3,500평의 비닐하우스와 1,100평의 노지에서 열심히 농사일을 하며 뒷바라지를 했다.
어느덧 30대 초반을 훌쩍 넘기고 있던 공근식 씨는 '그래도 고등학교 졸업장은 따고 싶다.' 라는 생각을 했고, 대전 중구 대흥동에 위치한 '성은야학'에 찾아갔다.
그곳에는 카이스트 물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있던 자원봉사자 5명이 있었다. 공부를 손에서 놓은지 너무나 오래되었기 때문에, 기초부터 모두 다시배웠다.
농사일과 공부를 병행하며 비가 오는 날이나 쉬는 날에는 밤이 늦도록 문제를 풀었다. 모르는 문제가 생기면 카이스트 대학원생들이 도와주었다. 열심히 공부하던 공근식 씨는 '나도 대학교에 가서 더 공부해보고 싶다.'라는 마음이 들었다.
카이스트 자원봉사자 중 1명이었던 이수석 씨에게 어렵사리 이야기를 꺼낸 공근식 씨는, '선생님, 저도 대학교에 가서 선생님처럼 물리학이라는 학문을 더 배워보고 싶습니다.' 라고 말했다.
이수석 씨는 도리어 크게 반색하며 '안그래도 저희는 공근식 씨가 검정고시만 합격하고 공부를 그만두면 어쩌나' 걱정했다고 하면서, '공부를 늦게 시작하셨지만 공근식 씨라면...' '꼭 어느 대학교든 가셔서 공부를 해보십시오.'라고 진심으로 격려해주었다.
저한테 가장 큰 시발점은 야학이죠. 카이스트 박사과정 하고 계시던 선생님들 다섯 분을 만난 게 큰 행운이었다. 이에 자신감을 얻은 공근식 씨는 수능시험에 응시했고, 2004년 30대 중반이 넘어서 배재대학교 전산전자물리학과에 입학했다.
2년 간, 농사일을 병행하며 바쁘게 공부하던 공근식 씨를 배재대학교 박종대 교수(서울대학교 물리학학사, 석사/미국 뉴멕시코 주립대 물리학 박사)가 찾았다.
박종대 교수는 '공근식 씨는 물리학에 대한 이해가 남다르신데, 카이스트 물리학과에 1명에 한해서 청강을 추천할 수 있습니다. 제가 연락을 따로 해 놓을테니, 우리 학교를 대 표해서 청강을 하시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라고 말했다.
공근식 씨는 처음에 고사하면서 '카이스트는 한국 최고의 수재들이 다니는 곳인데, 저 같이 늦게 공부를 시작한 만학도는 따라가기가 버거울 것 같습니다.' '학교를 대표해서 가야 한다면 저 같은 늦깎이 대학생말고 젊은 학생들이 가는게 맞지 않겠습니까?' 라고 말했지만
박종대 교수는 '아닙니다. 학교를 대표해서 가는 자리이기 때문에 학부생 한 명이 가야한다면 반드시 공근식 씨가 가셔야 합니다.' 라고 말했다. 그렇게 공근식 씨는 약 2년 가까이 카이스트에서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배재대에 교환교수로 와 있던 고려인 교수와 러시아 연구원이 늦은 나이에 공부하던 공근식 씨의 열정을 눈여겨봤고, 박종대 교수가 적극 추천하여 러시아 유학을 고민하게 되었다.
마침 태풍으로 인해 농사를 짓던 비닐하우스가 전부 부서지면서, 농사를 지을 수가 없게 되었다. 동생들에게 '휴학을 하고 러시아에 가서 더 공부를 해보고 싶다.'고 말하자 동생들은 '형님이 저희 공부할 동안 저희를 키우셨는데, 이제 마음놓고 공부하세요 형님. 졸업 때까지 학비 걱정은 하지 마세요. 저희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라고 말해주었다.
농사꾼 만학도 러시아 유명 대학 수석 졸업 화제 2010년, 공근식 씨는 41살의 나이에 러시아 모스크바 물리기술대학(MIPT) 물리학과에 입학했다.
2010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배출한 모스크바 물리기술대학은, 러시아의 이공계 인재들이 입학하는 곳이다. 공근식 씨의 첫 도전은 실패했다. 난생 처음 보는 러시아어가 너무 어려웠던 것이다. 1학기는 유급을 당하고 한국으로 복귀했다. 귀국한지 3개월 뒤, 러시아 대학 측에서 다시 전화가 왔다. 항공공학과로 전과하고 재입학을 하는게 어떻냐는 것이었다.
절치부심한 공근식 씨는 러시아어 사전과 학습교재를 닥치는대로 사들고 러시아로 떠났다. 공근식 씨 스마트폰에 보면 음성녹음 기능 있잖아요. 들으면서 모든 내용을 다 녹음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수업 끝나고 나면 반복해서 듣고 반복해서 듣고
다시 러시아로 온 공근식 씨는 모든 강의 내용을 녹음한 뒤, 반복 청취해가며 모르는 단어는 발음을 듣고, 묻고, 쓰고, 사전을 찾아가 번역해가면서 공부했다.
공근식 씨는 47살에, MIPT 항공공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3학년 이후의 학점은 전부 A+, 대학 졸업 논문인 '화학 변화를 고려한 우주 발사체의 성능 향상 계량화' 논문은 최우수 평가를 받았다.
러시아 항공과학업계 월간지 표지모델로 선정되었으며,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2018년, 49세의 나이에 전액 장학생으로 4년 간의 박사과정에 들어갔다. 주 연구분야는 '극초음속 기술(High-Hypersonic)' 이다.
2022년 9월, 53세의 나이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논문명은 '화성 대기에서 하강하는 우주선 주변의 흐름을 모델링하는 특징'이며 MIPT에서 만장일치로 박사학위 논문이 통과되었다.
지금 제가 하고 있는 분야가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안 돼 있는 분야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더 욕심도 납니다. 한번 해보고 싶고, 그냥 내가 배운 것(학생들에게 조금 도움 주고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공근식 씨와 같이 30대가 훌쩍 넘어서 공부를 다시 시작하는 사람은 수학이 가장 큰 걸림돌인데, 카이스트 박사과정 대학원생들 (현재는 모두 박사가 되었다.)이 본 공근식씨는 수학에 대한 이해도가 남달랐다고 한다.
공근식 씨는 집중력이 매우 좋았고 공부량 자체도 많았지만, 결정적으로 체력이 매우 좋았다. 다만 늦게 잠이 드는 것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평생을 농사일을 하며 체득된 생체 리듬에 따라 공부를 했다고 한다. 동이 틀 무렵이면 매우 일찍 일어나서 공부를 시작하고 밤 9시에 잠들었다.
러시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공근식씨는 아주 이른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씻고, 일터에 나가듯 책상에 앉아서 공부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