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꾼 - 인생의 희노애락을 담다

"딸이랑 같이 오세요. 할머니"

내가 살 물건이 아니라는 듯한 매장점원의 말에

서러워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컴퓨터 선생님이 아이패드가 좋다고 했으니

이걸 사야겠단 마음뿐이었다.

아이패드 프로와 애플 펜슬까지 사고

딸을 데려올 필요 없이 매장을 나섰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기회만 있으면 무언가 배우는 걸 좋아했다.

여자는 학교 대신 시집을 가던 게 당연하던 때였다.

부모님 몰래 익산여고 시험을 보고 합격했다.

그때를 잊을 수가 없다.

아버지는 칭찬 한마디 해주지 않으셨지만,

보리 서른 가마니를 팔아 등록금을 내주셨다.

결혼 후에도 늘

'내가 배워서 할 수 있는 게 없을까 고민했다.

공무원인 남편은 못된 짓을 안 해서 생활비가 부족했다.

내가 뭐라도 배워서 열심히 살아야 했다.

집을 짓고 싶어서

공사현장의 사람을 붙잡고 물어봤다.

집 짓는 법을 배우고, 건설 허가를 받는 법, 건축 계약을 하는 법, 집을 분양하고 세놓는 법을 배웠다.

그게 커져서 분양 사업이 됐다.

집이 안 팔릴 때는

미싱 자수 학원에 등록했다.

기계를 사서 틈틈이 미싱 연습을 했다.

고장난 미싱 기계를 고치러 온 수리공에게

자수 공장 여는 방법 좀 가르쳐 달라 했다.

알려주는 대로 하나씩 해내다 보니

기사 열 명을 둔 공장이 됐다.

세월이 흘러 세상이 바뀌었다.

컴퓨터를 모르니 바보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할머니, 컴퓨터 안 배우시면 안돼요? 가세요."

컴퓨터 선생님의 말이었다.

나이 먹은 노인네가 와서 배운다니까

당황스러웠겠지.

그래도 난 꼬박꼬박 수업에 나갔다.

그렇게 3년을 버텼더니

컴퓨터도, 스마트폰도 쓸 줄 알게 됐다.

나는 파워포인트를 잘했다.

거기 있는 도형을 이것저것 쓰니,

'왜 이렇게 잘하냐'며 다들 놀랐다.

컴퓨터 선생님이 나더러

그림도 잘 그릴 거라고 했다.

그러면 한번 그려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아이패드를 사긴 했는데, 사용법을 몰랐다. 그때부터 유튜버, 구글이 내 선생님이었다.

유튜브 선생님 말이 너무 빠르면,

컴퓨터를 껐다 켰다 메모해가면서

날이 새도록 배웠다.

필요한 기능을 하나씩 천천히 익혀갔다.

뭘 눌러야 지워지는지

펜굵기, 색은 어떻게 바꾸는지.

배우는 과정에는 늘 부끄러움이 함께한다. 그 부끄러움을 견뎌야 배울 수 있다.

지금 내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린 그림이

900개가 넘어간다.

그리고 프로필 사진 밑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아이패드드로잉 작가' 여유재순.

'여유재순' 작가는 올해 아흔 살입니다.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1만7000명.

게시물마다 좋아요가 1000개를 넘어가요.

작가는 오늘도 한 장 한 장 그림을 그려냅니다.

서투르고 느리더라도,

포기하지만 않으면

더 나아질 거란 걸 알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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