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꾼 - 인생의 희노애락을 담다

George Washington

죠지 워싱턴(1732년 2월 22일 ~ 1799년 12월 14일)은 미국의 초대 대통령(1789년~1797년)이다. 1775년부터 1783년까지 벌어진 미국 독립 전쟁에서는 대륙 군 총사령관으로 활동하였다. 처음에는 미국의 대국민들이 그를 국왕과 같은 군주로 인식하여 서로 거리감을 느꼈으나, 점차 미국의 건국과 혁명 과정에서 주요한 역할을 수행하여 "미국 건국의 아버지"라고 불릴 정도로 유명한 정치인으로 등극했다.

미국 최초의 13개 주

영국과 독립전쟁 당시, 서로의 이해관계 때문에 불협화음을 내던 13개 주를 단합시켰다.

트렌턴 전투

당시, 매번 영국에게 털리던 워싱턴의 미국군이었지만, 트렌턴 전투를 기점으로 전세를 역전시켰다.

이 전투는 참 기이했는데. 워싱턴은 남은 군대를 이끌고 영국군을 피해 델라웨어 강을 건넜다. 그리고 이 강을 방어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곧 겨울, 즉 강이 얼어붙는 시기가 와서 12,000명의 영국군이 얼음 위로 도강하느라 강에서 방어를 할 수 없었다.

델라웨어 강

워싱턴의 운-1

6개월 내내 한 번을 이기지 못한 사기 바닥의 군대 + 이 군대마저도 10일 뒤에는 해산시켜야 하는 상황에서 절망하던 워싱턴에게 한가닥 운이 터진다. 그동안 워싱턴에게 합류 거부하던 어떤 군의 장군이 영국 군에 포로로 잡히고 그 휘하의 군대는 운 좋게 도주했는데, 이 7천 명의 군대가 워싱턴에게 합류한 것이다. 이 시점이 군대 해산 일주일 전이다. 보병전에서는 매번 털리던 상황에서 워싱턴은 도박을 강행하였다. '대포 앞에서는 누구나 평등하니, 대포로 이겨보자.'며 대포를 끌고 가까운 독일군 주둔지 <영국군 동맹> 트렌턴을 공격하기로 하였다.

워싱턴의 운-2

근데 가는 길이 독일군 정찰 구역과 겹쳤다. 정말 운이 좋게도, 이쯤에 워싱턴 군대가 아닌 다른 미국 민병대가 독일군과 이 구역에서 2번의 소규모 교전을 치렀으며, 독일군은 '설마 3 연벙 이겠냐'며 딴 곳으로 가버렸다. 그래서 워싱턴 군은 피해 없이 돌파할 수 있었다. 워싱턴 군이 적진에 예정보다 늦게 도착하였는데 이때는 독일 군이 주변 순찰을 막 끝낸 타이밍이었다. 예정대로 왔으면 마주쳐야 했는데, 늦게 도착한 덕에 피해 없이 또 정말 운이 좋게도 적진 근처에서 대포 구축을 끝낼 수 있었다.

대포 앞에서는 너도 한방 나도 한방

펑~펑~펑~ 워싱턴 군은 큰 쇠공이 나오는 대포랑 작은 총알이 수백 개씩 나가는 대포를 계속 날렸다. 곧, 독일군은 항복하였다. 기초훈련만 간신히 마친 군대가 정예병 <독일군은 용병 대였음>을 때려잡은 희귀한 전투 사례가 되었다. 대포 앞에서는 너도 한방 나도 한방임을 극적으로 깨달은 워싱턴. 첫 승리에 기세가 오른 병사들은 6주 복무 연장에 동의하였다. 이 6주 동안 워싱턴은 영국과의 보병전은 피하며 영국군이 지나는 길목에 대포를 집중 배치하여 공격하는 형태로 전투를 치렀다. 이 방식이 통한다는 게 증명되었고, 미국 의회에서 군대 2만 명을 충원해 주었다.

 

이렇게 되니, 자연스럽게 전쟁은 장기전이 되었다. 이 실적을 바탕으로 프랑스한테 우리도 잘 싸운다며 좀 도와달라며 두 손을 비볐고, 영국 엿 먹일 생각에 한껏 신이 난 프랑스는 제법 싸우는 미국을 지원하기로 했고, 이를 바탕으로 미국은 전쟁에서 승리하여 독립하게 되었다.

전쟁영웅이었지만 권력에 관심 없었던 워싱턴

이런 억세게 운도 좋고 지휘 자질과 센스, 친화력과 리더십이 괜찮은 미국의 독립영웅은 미국이 독립한 후 미련 없이 군권을 반납하고 고향으로 떠났는데, 주변인과 대중들의 잇따른 요청에 못 이겨 미국의 초대 대통력 직을 수행하였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 워싱턴


주변인과 대중들의 잇따른 요청에 못 이겨 미국의 초대 대통령 직 을 수행. 전례가 없던 새로운 '대통령' 직이었으나, 당시 대중들에게 '왕'의 이미지와 큰 차이가 없었다. 워싱턴 본인도 왕처럼 행동하였다. <자기를 제삼자로 칭하는 언행 등등> 대통령직 2번을 연임하며 8년 동안 레임덕은커녕, 큰 인기 속에 국정을 원활히 수행하였다. 그래서 당시 미국인들은 그가 종신하길 원하였다. <이 당시 법 기준으로 대통령직 종신이 불법도 아니었다>

 

+ 군인 출신이며 독립에 압도적으로 공헌한 영웅 

+ 신생국가를 안정적으로 통치하며 입증된 능력.

+ 대중들의 압도적인 지지
+ 행정부가 워싱턴 라인의 인사들로 한가득

+ 법적으로 인정받는 워싱턴의 사병도 제법 존재

+ 개인 재산도 부를 축적했다고 할 수준만큼은 되었음.

능력도 있고, 지지도 있고, 하면 안 된다는 분위기도 없는 상황.
근데 워싱턴은 안 했음. 권력욕을 넘어선 그의 자제력은 정말 초인 그 자체. 신생국가 형성이나 독립에 이바지한 인물이 독재 인사가 되는 경우가 흔했는데, 워싱턴은 안 그랬다는 것.

훌륭한 권력자의 참된 모습을 보여준 워싱턴

이런 워싱턴의 행동은 전례 없던 대통령 직책의 이미지 형성에 아주 큰 기여를 하였다. 대통령은 이러이러해서 왕과 다르다는 걸 보여준 꼴. 당시 영국 왕이었던 조지 3세도 워싱턴이 물러나서 고향에 돌아간다고 하니, '그가 만약 그런다면 그는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 일 것'이라고 평하였다.

 

이러한 행동은 이후의 미국 대통령들에게도 일종의 억제 역할을 하였다. '니가 조지 워싱턴보다 잘 났으면 2번 이상 대통령 해라'라는 식. 그래서 별다른 법적인 조항 없이도 이후의 대통령들은 전부 2번까지만 대통령직 수행했다. 일종의 암묵적인 룰이랄까.
하지만
대공황+2차대전의 특수성으로 4번 연임한 32대 대통령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등장하자, 의회에서는 대통령은 2번까지만 연임 가능하다는 법적 조항을 만들어 버렸다.

물론 미국 초기 대통령의 아킬레스 건이었던 노예제에서는 워싱턴도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조금의 변명을 부여하자면, 워싱턴은 자신의 유언장에 자기 부인이 죽으면 자기 소유의 노예들을 다 해방하라고 명시하였다.

 

억세게 운도 좋고,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갖춘 독립 영웅이 초대 대통령을 했고, 또, 그 사람이 성공적으로 대통령직을 수행하여, 종신을 할 수 있는 모든 우호적인 조건을 갖추었음에도 퇴임하였다. 그래서 '대통령'이라는 전례 없던 직책에 새로우면서도 긍정적인 이미지를 부여하게 되었다. 이런 사람이 미국의 초대 대통령이었다는 건 미국의 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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