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꾼 - 인생의 희노애락을 담다

청렴한 부장 판사

한 부장 판사가 있었습니다. 관용차가 딸려 나왔지만 가족들은 구경도 못했습니다.

 

“저는 아버지 관용차에 한 번도 타 본 적이 없습니다. 이 차는 출퇴근할 때 쓰라고 주는 것이라며 단 1미터도 태워주지 않으셨던 것이 저는 답답했습니다”

-그 판사의 딸

 

그 판사는 동네 주민이 인사차 사온 '델몬트 주스 2병도 '버럭' 하고 받지 않았습니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법 얘기를 물어올 때마다 남편은 한사코 그런 이야기를 듣지 말라고 했어요. 판사는 개인적으로 법률 상담을 해선 안된다는 거였어요”

- 그 판사의 부인

내가 하는 일을 아무도 모르게 하라

“그분이 판사였다는 사실을 부음 기사를 보고 알았습니다. 성당 사람들 모두 그가 판사였다는 사실도, 어떤 일을 했다는 사실도 알지 못하고 있었어요.”

- 그 판사가 다니던 성당 수녀

내 재판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이 없도록 해달라

10년 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한기택 판사 이야기입니다.

한기택 판사는 목숨 걸고 재판하는 판사로 통했습니다.

사건기록을 싸들고 퇴근하고, 출근하기 전까지 읽고 또 읽었습니다.

몸이 망가져도 말입니다.

 

“내 재판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이 없도록 해달라”라고 기도했던 그의 판결은 지금도 회자되고 있습니다.

인권을 중요시하는 판사

“가혹행위 때문에 목숨을 끊은 것은 직무수행과 관련이 깊다"

- 2002년 5월, 가혹행위로 자살한 이등병. 국가유공자 인정

“재벌가 결혼 축의금에 대한 증여세 부과 정당”(2004년 4월)

“공직자가 재산공개 거부하면 사유를 국민에게 공개해야" (2003년 3월)

"황사 많은 날 근무하다. 사망한 환경 미화원, 업무상 재해” (2004년 3월)

“비 장애인의 직업선택의 자유가 시각 장애인의 생존권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 (2004년 9월)

좋은 판사, 좋은 법원

2015년, 한기택 판사와 함께 토론회. 좋은 판사, 좋은 법원을 토론하다.

최근 열린 한기택 판사 10주기 추모 행사의 주제는 좋은 판사, 좋은 법원이었습니다. (출처 : 법조 뉴스)

 

답은故人이 이미 갖고 있었습니다.

 

“내가 뭐가 되겠다는 생각을 버리는 순간 진정한 판사로서의 삶이 시작될 것으로 믿습니다.

내가 목숨 걸고 악착같이 붙들어야 할 것은 그 무엇이 아니라, 법정에 있고 기록에 있는 다른 무엇이라 생각합니다.”

- 한기택 판사 (1959~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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