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꾼 - 인생의 희노애락을 담다

선생님과 제자의 인연

아미앙 카톨릭 학교의 '브리짓'은 당시 남편과 아이 3명을 둔 39살의 프랑스 문학, 연극부 교사였음. 브리짓의 딸 로렌도 같은 학교 학생이었는데 딸의 반 친구 중 특별한 남학생이 한 명 있었음.

뛰어난 두뇌를 가진 에마뉘엘

15살이었던 '에마뉘엘'은 어려서부터 특출 난 영특함으로 선생님과 친구들 사이에서 유명했고 브리짓의 딸 로렌도 에마뉘엘을 '엄청난 애 '모르는 게 없는 애'라고 부를 정도였음.

연극 수업을 통해 만나게 된 두 사람

사제지간이지만 직접적인 접점은 없던 두 사람은 에마뉘엘이 연극 수업에 참여하게 되면서 처음 만났고 같이 각본을 쓰며 점점 더 가까워졌음.

24살의 나이 차이를 극복한 사랑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두 사람은 결국 24살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사랑에 빠지게 되었고 16살 에마뉘엘은 브리짓에게 정식으로 사랑고백을 함.

현실의 장벽

근데 보다시피 이 관계는 문제가 너무 많았음 일단

1. 브리짓은 유부녀이자 성인이었고

2. 에마뉘엘은 미성년자, 딸의 친구인 데다 남자의 부모님은 아들이 브리짓 딸 로렌과 사귀는 줄 알았던 거임... 근데 그게 아닌 로렌의 어머니와 사귄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었고 엄청난 충격을 받음.

부모님은 브리짓을 만나 18살 전까지 아들과 만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지만 브리짓은 "그건 약속 못 드리겠네요"라고 답함. 부모님은 에마뉘엘을 또래 여자 친구와 엮으려고도 해보았지만 거세게 거부했고 결국 아들을 멀리 떨어진 지역의 학교로 전학 보냄.

당신이 뭘 하든 난 꼭 당신을 찾아서 당신과 결혼할 거예요

17살이었던 에마뉘엘은 떠나기 전 브리짓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함 "당신이 뭘 하든 난 꼭 당신을 찾아서 당신과 결혼할 거예요"

브리짓은 에마뉘엘을 말을 믿었고 에마뉘엘의 말에 따르면 18살 전까진 둘이 편지를 통해서만 대화했다고 함. 그 후 에마뉘엘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8살 성인이 되면서 고향에 찾아옴. 그리고 부모님에게 가서 아직도 브리짓을 사랑한다 고백했고 이제 부모님은 질 수밖에 없었음.... 결국 브리짓은 에마뉘엘이 있는 지역으로 이사를 가게 됨.


오랜 시간에 흐른 2006년 브리짓은 남편과 "공식적으로" 이혼하고, 18개월 뒤인 2007년에 두 사람은 드. 디. 어 결혼함
~~~~ 그리고 10년 뒤 ~~~~

프랑스 역사상 최연소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


에마뉘엘 '마크롱'은 프랑스 역사상 가장 어린 나이로 대통령이 되었고 브리짓 마크롱은 영부인이 되었음. 그리고 선거유세에 성공하는데, 똑똑한 브리짓의 힘이 아주 컸다고 함.


이상 프랑스 대통령 부부의 사랑 이야기 끝 😍😍😍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의 제25대 대통령.
프랑스 역대 최연소 대통령이자 G20에 속하는 정상들 중에서도 최연소이다. 제2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자 제2제국의 황제인 나폴레옹 3세가 취임했을 당시의 나이와 동갑이지만, 연수로 따지면 에마뉘엘 마크롱이 39년 4개월 19일로 40년 8개월인 나폴레옹 3세보다 어리다. 안도라 공국의 공동 영주 중 한 명이기도 하다.

 

파리 정치대학과 국립 행정학교를 나온 전형적인 엘리트 관료다.

2004년 국립 행정학교에서 학업을 마친 후 재무부 산하의 금융 조사관을 지냈다. 2006년에는 프랑스에서 가장 큰 경제 단체 "Mouvement des Entreprises de France"의 상무이사직을 제안받기도 했지만 거절했다.

자신이 지지한 사회당 후보를 꺾고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 당선되자 정부 부처를 떠나 투자은행 로스차일드에 입사했다. 이 과정에서 국립 행정학교를 졸업하고 10년 동안 정부 기관에서 일하겠다던 계약을 어긴 대가로 한화로 6천만 원이 넘는 벌금을 내야 했다. 물론 그가 금융인으로서 벌어들인 수입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액수였다.

로스차일드에서 초고속 승진을 거듭하며 부를 쌓았다. 상무이사로 승진한 해에 스위스의 거대 식품 회사 네슬레의 아기 음료 부분을 재인수하는 900만 유로(한화로 119억) 짜리 계약에 성공하는 등 프랑스 최고 수준의 인수합병 전문가로 활약했다. 금융인으로서 잘 나갔지만, 그의 학력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공직에 대한 열망이 큰 인물이었다. 파리 정치대학 재학 시절 파리 11 지역구 시장 선거에 봉사활동자로 참여한 경험이 있으며 2007년 총선에서는 사회당 소속으로 피카르디 지역에 출마하려 했으나 서류 단계에서 공천 탈락하였다.

프랑수아 올랑드 정부에서 30대 중후반의 나이로 비서부실장과 경제산업 디지털부의 장관을 역임했다. 

장관 시절 경제 활성화와 고용 촉진을 위해 대규모 규제 완화 패키지인 '마크롱 법'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좌파 정부에서 우클릭을 주도한 장관이라는 이유로 극렬한 비난에 시달려야 했고 이것이 그가 중도주의를 표방한 이유가 되었다.

2016년 8월, 장관직에서 물러나 2017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했고, 스스로를 좌파도 우파도 아닌 '자유주의자'로 규정하며 신당 앙 마르슈!(En Marche!)를 창당했다.

 

유력한 대선 주자였던 공화당의 프랑수아 피용이 가족 보좌관 채용 논란에 휘말려 지지율이 떨어지고 사회당 후보인 아몽의 지지율은 대통령 올랑드의 지지율에 좌우되어 침체되는 상황에서, 중도 좌우파 유권자들의 대안으로 떠올랐다. 프랑수아 올랑드 같은 사회당 내 주요 인사들은 자기들을 비판하는 아몽을 버리고 마크롱을 지지했다.

 

1차 투표 결과 23.9%로 1위를 차지했다. 2위는 21.4%를 기록한 마린 르 펜이다. 2017년 5월 8일 2017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 2차 투표에서 66.06%의 득표율로 르 펜을 꺾고 당선되었다. 프랑스 제5 공화국 대통령 가운데서 2002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 때의 자크 시라크에 이어서 2번째로 높은 득표율로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며 역대 대통령 선거 결과를 통틀어봐도 3번째로 높은 득표율이기도 하다.

아내 브리짓에게는 마크롱보다 2세 많은 아들 세바스티앵(엔지니어), 마크롱과 학창 시절 같은 반이었던 딸 로랑스(의사), 마크롱보다 7세 적은 딸 티펜(변호사)까지 1남 2녀의 자녀가 있었고 이들이 7명의 자녀를 두고 있어 마크롱은 30대의 나이에 7명의 의붓손자가 생겼다. 이들은 마크롱과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지 2007년 결혼식에 참석했으며 대선 후보 시절 선거 캠페인에 참여하기도 했다. 한편 은행원이었던 브리지트의 전 남편 앙레루이 오지에르(André-Louis Auzière)는 브리짓과 이혼한 후 은둔하며 지내다 2019년 12월, 6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역대 프랑스 대통령 중 크든 작든 이런 스캔들이 없는 사람이 매우 드문데, 마크롱도 그 전통(?)을 이은 셈이다. 다만 역대 프랑스 대통령들의 사생활을 생각하면 마크롱은 양호한 편이다. 시작이 불륜이긴 했으나 브리짓과 결혼한 이후로 불륜을 저지르거나 스캔들에 휩싸인 적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정서로는 어떻게 이런 이력을 가진 인물이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는지 이해가 안 가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정치인과 사생활을 분리하여 판단하는 프랑스 국민 정서 상 그의 가정사는 선거에 큰 장애물로 작용하지 않았다. 이 정도 사생활은 결격사유가 되지 않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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