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은 가뭄이나 장마철에 관계없이 일정한 수위를 유지하며 마을 사람들은 우물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정성껏 제를 올린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이 또 하나 기원하는 것이 있다. 바로 '우물이 넘치는 일이 결코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참으로 이상한 기원이 아닐 수 없다.
스님의 방문
1456년 경 여름, 오랜 가뭄에 더위까지 기승을 부렸고. 그러던 어느 날, 한 스님이 지금의 충청북도 사곡리의 사청 마을을 지나가게 되었다.
뜨거운 날씨에 갈증은 점점 심해졌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스님은 마을에서 우물을 찾을 수가 없었다.
"지나가는 객승인데, 목이 말라 그러니 물 한 그릇 얻어 마실 수 있겠습니까?"
헌데 아낙은 길어다 놓은 물이 다 떨어지고 없다며 물동이를 이고 나섰다. 스님, 대청마루에 앉아서 쉬고 계십시오. 제가 물을 길어 오겠습니다. 그런데 물을 길으러 간 아낙은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다. 스님은 의아한 생각이 들었지만, 그냥 갈 수도 없어 몇 시간이 지나도록 아낙을 기다렸다. 그러다 마침내 해가 질 무렵이 되어서야, 아낙이 드디어 집으로 돌아왔다. 아낙은 땀을 뻘뻘 흘리며 이고 온 무거운 물동이를 내려놓았다. 잘 마셨습니다. 그런데 샘이 무척이나 멀리 있나 봅니다." "이 물은 여기서 10리(약 4km)쯤 떨어진 개울에 가서 길어 온 물입니다. 가뭄 때문에 마을 근처의 물은 모두 말라버렸습니다."
아낙의 정성에 감동한 스님의 선물
스님은 처음 보는 자신을 위해 그 먼 곳까지 가서 물을 떠다 준 아낙의 마음에 크게 감복했다. 그리고는 이내 자신이 짚고 온 지팡이를 들어 마당의 땅을 세 번 두들겨 보았다.
"과연 이 마을은 물이 귀하겠습니다. 마을의 땅이 층층이 암반으로 덮여 있으니...”. "내 주인아주머니의 마음에 보답하는 뜻으로 좋은 우물 하나를 선사하고 가겠습니다." 그러고 나서 스님은 그 집을 나와 마을의 구석구석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동네 한복판에 다다른 스님은 지팡이를 들어 세 번을 두들겨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곳을 파십시오.
"스님, 여기는 바위가 아닙니까? 물이 나올 리가 없습니다."
"어서 여길 파십시오."
"겨울이면 더운물이 솟아 나올 것이오, 여름이면 냉차 같은 시원한 물이 나올 것입니다." - 뿐만 아니라 아무리 날이 가물어도 마르지 않을 것이며, 심한 장마에도 물이 넘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닷새쯤 파냈을 때, 드디어 바위 틈새에서 물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맑고 깨끗한 물이 콸콸 흘러나와, 지금까지 깊이 파낸 곳을 가득 채웠다.
하지만 마냥 기뻐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스님은 엄숙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앞으로 이 우물은 가뭄이나 홍수에도 넘치거나 줄어드는 일이 없을 겁니다.
"그러나 만약 이 우물이 넘치는 날에는 나라에 큰 변고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우물이 세 번째 넘치면, 이 세상은 말세가 될 겁니다."
그 후 '이 우물이 세 번 넘치면 말세가 온다'는 소문은 멀리까지 퍼져 나갔고, 우물은 말세 우물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때 여러분은 이 마을을 떠나십시오." 스님은 이 말을 마지막으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곳을 떠나버렸다. 하지만 우물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채, 어느덧 세월은 백여 년이 넘게 흘렀다.
1592년 처음으로 넘친 우물
그러던 어느 날, 새벽에 물을 길어 우물에 갔던 사람이 깜짝 놀라 기절을 하고 말았다.
우물의 물이 철철 넘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로부터 며칠 후, 조선에 왜구가 쳐들어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1592년에 벌어진 임진왜란이었다.
1910년 두 번째로 넘친 우물
그 후 우물은 다시 잠잠한 채로 사백여 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1910년 정월 중순에 두 번째로 우물이 넘치는 일이 벌어졌다. 우물이 넘친 그 해, 우리 민족은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는 경술국치를 겪게 되었다. 이렇게 우물은 지금까지 두 번 넘쳤다.
1950년 6월 24일 높이 차오른 우물
이때는 우물이 넘치지 않았지만, 늘 일정량을 유지하던 우물이 높이 차올랐다고 한다. 그리고 이 날, 한반도에서는 6.25 전쟁이 일어났다.
그 후 우물이 넘치지는 않았지만, 물이 불어난 적이 또 한 번 있었다.
1995년 11월 또다시 높이 차오른 우물
하지만 이때는 우물이 무슨 일을 알리려고 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겉으로 드러난, 국가의 위기라고 할만한 사건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물의 힘을 믿는 사람들은, 이 즈음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어떤 위험이 우리나라에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라의 위기를 알려주고, 세 번째로 넘치면 말세임을 알려준다는 신비한 우물. 마을 사람들은 여전히 이 우물을 귀하게 여기면서, 우물이 세 번째로 넘치는 일이 벌어지지를 않기를 기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