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꾼 - 인생의 희노애락을 담다

대나무숲

1학년 때 한 남자를 만났어요. 

외모에 관심 없고 엄마가 사 오면 다 고분고분 입는 것 같은 그런 남자요. 

처음엔 찌질 하다 생각했는데, 하도 저만 좋다고 따라다니길래 받아줬어요.

 

우리의 집은 두 시간 거리였어요.

다음날 시험이어도, 아파도, 차가 끊길 것 같아도 항상 절 바래다줬어요.

멍청해 보여서 더 자신 생각도 좀 하고 그냥 집에 가라고 소리를 질러봐도, 제가 데려다줘도 또 제 뒤를 따라와서 제 방에 불이 켜지면 그때서야 집에 갔어요. 처음 싸운 날은 제가 울었는데, 화들짝 놀라더니 자기가 눈물을 뚝뚝 흘리더라고요. 저를 울게 해서 미안하다면서요. 이때만 운 것도 아니고, 제가 아프기만 해도 울었어요. 이 사람은 난 괜찮은데 왜 우냐니까 자기는 안 아픈데 제가 아파하니까 대신 아파줄 수 없고 안쓰럽다면서 울더라고요.

 

제가 슬퍼하면 자기도 슬프다고 울고, 제가 행복해하면 자긴 그게 가장 좋다면서 행복해했어요.

달랑 외투 두 벌 가지고 겨울을 나면서도, 제가 지나치면서 예쁘다 한 물건은 돈을 아끼고 모아서 기념일에 선물해줬어요. 제가 행복해야 자기도 행복하다면서요. 지나가다 술 취한 행인이 돈 달라고 시비를 건 적도 있는데, 키도 작으면서 제 앞을 막아서더라고요ᄏᄏᄏᄏ 싸워서 손도 찢어졌는데, 또 제가 놀랐다고 기어코 집에 바래다주고 갔어요. 

 

제가 알바를 하다 아르바이트비를 떼어 먹힌 적도 있었는데, 기어코 자기가 찾아가서 다 받아내줬어요.

자기 일처럼 화를 씩 씩 내면서요. 이렇게 5년이란 시간을 보냈어요. 지날수록 보고만 있어도 너무 바보 같고 답답해서 계속 고민하다가 이 관계를 끝내기로 마음먹었어요.

 

대학원생이라 모아둔 돈이 없어서, 집에서 보태줄 돈도 없어서 머뭇거릴 성격인 거, 더 좋은 남자 만나겠다 하면 보내줄 사람인 것도 잘 알아서... 그게 너무 답답해서, 그래서 제가 청혼했어요. 사귄 지 7년째 되는 날에, 처음 고백받은 저희 집 앞에서요. 

 

결혼하자고. 안 하면 평생 키스 안 해줄 거라 했어요ᄏᄏᄏ

돈은 내가 벌고 있으니 몸만 오라 했더니 멍하니 있다가 저를 꽉 껴안는데 또 몰래 울고 있는 게 느껴져서 왜 우냐면서 저도 같이 한 시간 동안 울었어요 ᄏᄏᄏᄏ...

 

그렇게 저희 오는 3월에 결혼해요! 

가진 것 없이 월세부터 시작해도 이 사람이 저의 전재산이나 다름없기에 앞으로의 생활을 상상하면 웃음만 나오네요. 학교를 떠난 지 오래된 곧 30대를 바라보는 늙은 선배지만 평생의 반려자를 만나게 해 준 학교가 너무 고마워서, 이렇게 글 보내 봅니다!

 

후배님들, 살다가 이 사람의 행복이 내 행복이고, 이 사람의 슬픔이 내 슬픔이라 느껴지게 되는 사람이 있다면 꼭 놓치지 말고 함께하세요.

 

그 어떤 사랑보다 고차원적인, 평생을 거쳐도 만나기 힘들 사랑이라고 제가 자부할게요. 모든 후배님들의 사랑이 행복하기를 바라며 이 저희도 아름답게 잘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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