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꾼 - 인생의 희노애락을 담다

아빠 어디가~!

블라인드에 올라온 - 익명 사연

내 아버지는 엄청 가부장적이고 꽉 막히면서도 과묵한 성격이라 늘 집에선 아버지 눈치 봐야 했고 아버지가 기침이라도 하면 방에서 공부하다가도 깜짝깜짝 놀라곤 했음.

 

주사도 있어서 간혹 기분 안 좋으면 가정폭력도 했었는데 한 번은 고3 때 학원에 남아 공부하다 집에 늦게 들어간 걸 만취한 아버지가 나한테 술냄새 난다며 다짜고짜 주먹질하는데 진짜 너무 억울하고 화가 나서 병원 가서 피 뽑아 알코올 농도 가져오려고 아빠 잘 때까지 기다린 적도 있음.

 

결국 그날 나가진 않았는데 고요해진 집안 공기에 안도하면서도 이불속에서 얼마나 이 악물고 흐느껴 울었는지... 그때 수백 번 다짐한 게 훗날 내 아이를 낳으면 난 결사코 자상하고 훌륭한 아버지가 되리라 되뇌고 또 되뇌었음.

 

시간이 흐르고 흘러 첫째가 초등학생 저학년이 됐고 비행 때문에 오래간만에 집에 갔는데 주방 식탁에 아이가 서툰 글씨로 학교 활동 학습지 한 게 놓여있는 거임.

 

거기에 가장 존경하는 사람 가장 좋아하는 사람에 둘 다 우리 아빠라고 쓰여있는 거보고 주저앉아서 옷도 안 갈아입고 한참을 꺽꺽 울었음. 이유란에 아빠는 늘 자상하고 친구처럼 재미있다고 쓰여 있었는데 울다 웃다 다시 울다 웃다 반복...

 

난 별로 사랑 못 받고 늘 아버지의 그늘에 주눅 들었었지만 우리 아이들만큼은 세상 누구보다 아빠라는 버팀목을 크게 느낄 수 있도록 하자고 늘 의식하고 부단히 노력했었는데 그게 조금은 빛을 발하는구나 싶어서 진짜 행복하고 좋았음.

 

보면 아들은 무조건 아버지 닮아간다고 하던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거 기억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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