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꾼 - 인생의 희노애락을 담다

조선 초기만 해도 지금의 잠실은 현재의 광진구 자양동과 붙어있는 강북 지역이었음

신천(川)의 유래

그런데 조선 시대에 홍수가 크게 나면서 잠실 북쪽으로 한강의 샛강이 생김. 그러면서 잠실 지역은 강북에서 떨어져서 섬이 됨. 이 샛강을 '새로 생긴 하천'이라 해서 '새내', '신천(川)'이라 고 불렀음

수심도 별로 안 깊어 배 없이도 건널 수 있었고, 비가 안 오면 거의 건천이 돼서 걸어서도 건널 수 있었다고 함.

<동국여지비고> 산천조

"한강물이 넘쳐서 지류가 생겼는데, 이 샛강을 신천(新川)이 라고 한다. 가물면 걸어서 건널 수 있고, 물이 불면 두 줄기 강물이 되어 저자도 아래에서 한 줄기로 합쳐진다. 중종 23 년(1528)에 군대를 동원해 돌을 날라다가 쓸려나가는 강둑을 보호하려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그리고 원래부터 있던 한강의 본류인 잠실 남쪽의 강을 '송파 강'이라고 이름 붙임. 당시 송파 지역에 있던 '송파나루'는 원주, 춘천, 단양, 영월 등 한강 상류 지역 물자가 집결하는 상당히 큰 나루터였다고 한다. 이 일대에 있던 '송파 시장' 역시 조선에서 손꼽히는 장터였다고 함.


또한 '송파진'이라는 군영도 있어서 뚝섬, 동잠실, 삼전도, 광 나루까지 관할하는 잘 나가는 곳이었음
그런데. 그런데

을축년 대홍수

일제 강점기이던 1925년 '을축년 대홍수'가 발생하면서 상황이 달라짐
샛강에 불과했던 신천 강이 한강의 본류가 되어버린 것. 결국 송파나루, 송파 시장도 모두 몰락하여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이 일대 상인들은 전부 인근의 석촌, 가락 등지로 이주하고 말았음.


또한 '누에를 기르는 집', 즉 '잠실(蠶室)'의 뽕나무밭 역시 다 쓸려 내려가고 토양 자체가 모래밭이 되어 황폐해지고 버려진 땅이 됨.

근세에 있어서 조선의 풍수해, 조선총독부, 1925

"(잠실에서) 물이 빠진 뒤에는 퇴적한 모래와 진흙 때문에 도로와 마을이 흔적도 알 수 없을 정도로 황량한 모래 벌판으로 변했으며, 겨우 포플라 나무와 나무 자재가 쌓인 것으로 보아 이 곳이 마을의 터전이었음을 추측하게 한다."
광복 이후로도 60년대까지 전기는 물론, 동사무소, 파출소도 없는 버려진 땅이었음.

석촌호수의 탄생

그러다가 1970년대 강남 개발에 들어가면서 당시 정부가 이 잠실을 강남에 편입하기로 결정함. 방법은 송파 강의 물길을 막아 매립하고, 잠실도 북부를 깎아 신천 강의 폭을 넓히는 것이었음. 그 결과 잠실은 1971년 강남에 붙은 땅이 됨. 그리고 이 과정에서 송파강이 호수로 남은 게 바로 '석촌호수'임.

역사적으로도 잠실을 제외한 송파구 지역과 잠실은 다른 행정구역에 속해 있었음
잠실 - 양주군 고양주면 → 고양군 뚝 도면 → 서울특별시 성동구
송파 - 광주군 중대면, 구천면 풍납리 → 서울특별시 성동구

 

1971년 강남 지역 편입 이후

서울특별시 성동구 → 서울특별시 강남구 → 서울특별시 강 동구 → 서울특별시 송파구

 

'송파나루'라는 지명은 한동안 잊혀져 있다가 9호선 역명으로나마 다시 쓰이게 됨

현재의 석촌 호수

물 위에서 하는 각종 재밌는 행사가 진행되기도 한다. 2014년에는 러버덕 프로젝트, 2016년 9월에는 슈퍼문 프로젝트, 2017년엔 스위트 스완 프로젝트, 그리고 2018년에는 평창 마스코트 전시 프로젝트를 동호에서 진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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