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꾼 - 인생의 희노애락을 담다

한 남편이 결혼한 지 6주 만에 사라졌다. 그러나 70년 후 믿기 힘든 진실이 밝혀지는데...

결혼한지 6주만에 전쟁으로 헤어진 남편

1940년 - 22살 페기는 공군 조종사 빌리를 만났다.

둘은 단숨에 사랑에 빠졌고, 얼마 후 결혼식도 올렸다.

그러나 행복한 신혼도 잠시..그들의 운명을 갈라놓을 위기가 닥쳤다.

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한 것이다.

공군 중위였던 빌리는 - 나치에게 점령당한 프랑스로 발령이 났다.

부부는 쓰라린 이별을 나눠야 했다.

그러나 페기는 그것이 남편과 마지막 인사가 될 줄 몰랐다..

그녀는 매일 빌리의 소식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녀는 전쟁 내내, 편지 한 통 조차 받지 못했다.

긴 전쟁이 끝났지만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빌리를 기다린 시간은 하루,

1달, 1년, 10년이 지나갔다.

70년동안 기다린 남편의 소식

페기는 재혼도 하지 않고 70년 동안 남편을 계속 기다렸다.

하지만 페기도 이제 자신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걸 알고 있었다.

이 그녀는 더 늦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남편을 보고 싶었다.

임무 수행중 실종 상태로 생사를 알 수 없는 남편

그런데 얼마전.. 국회의원 톤베리에게 보낸 편지에 답장이 도착했다.

그녀는 떨리는 마음으로 친척들과 편지를 열어보았다.

그런데 빌리는 기록에 따르면 임무 수행 중 실종 상태라고 했다.

그러나 빌리의 생사 여부는 정확히 알 수 없다고 했다.

남편 실종의 진실을 쫓는 아네 페기

페기는 여기서 멈출 수 없었다. 그녀는 빌리와 관련된 모든 곳을 수소문해가며 진실을 파헤쳐 갔다.

그러던 어느 날 페기의 삼촌은 직접 군에 찾아가 군사기록을 밝히라고 요청했다.

그들은 6개월 뒤, 다시 찾아오라고 말했다.

그런데 6개월 뒤 군에 다시 찾아간 페기와 친척들은 뜻밖의 소식에 깜짝 놀랐다..

한 프랑스 여성이 얼마 전 이미 복사본을 가져갔다는 것이다.

페기와 친척들은 당장 . 그 여성을 찾기 시작했다.

얼마 후, 군의 도움으로 그 여성과 연락이 닿을 수 있었다.

그녀는 빌리가 프랑스 노르망디에 있다며 페기를 그곳으로 초대했다.

노르망디에서 발견된 남편의 소식

페기와 친척들은 서둘러 프랑스로 향했다.

그런데 노르망디에 도착하자, 사람들은 페기를 열렬히 환영하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페기는 수수께기가 풀리기 시작했다!

빌리는 이 마을의 영웅이었다!

1944년, 노르망디 - 빌리는 적의 폭격을 맞아 방트 마을 인근에 추락하고 있었다.

전투기는 화염에 휩싸여 아래로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그때는 1944년 7월 페기와 결혼한 지 6주가 되던 때였다.

그러나 빌리는 그냥 추락한 게 아니었다!!

수백명의 목숨을 구한 빌리

그는 무고한 민간인 수백명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죽어가는 순간에도 조종간을 마을 반대쪽으로 돌리고 있었다! 그리고 인적이 드문 장소에 추락했다.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을 위해 희생한 빌리의 시신을 수습하고 장례식까지 치러주었다.

그리고 70년 동안 매년 빌리의 업적을 기리는 행사를 열고 있었다. 70년 만에 남편을 만난 페기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방트 마을 주민들은 마을에 빌리의 이름을 딴 거리 (Billie D.Harris Place)를 만들어, 그를 기리고 있다.

현재 빌리의 유골은 노르망디 국립 묘지로 옮겨졌다.

영웅을 추모하는 마을 주민들

방트 마을에 있는 빌리의 무덤은 영웅을 추모하는 의미에서 그대로 남겨져 있다.

아내 페기는 지금도 매달 남편, 빌리의 묘를 찾고 있다.

죽는 순간까지 무고한 생명을 구하기 위해 조종간을 놓지 않은 빌리의 영예를 기억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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