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꾼 - 인생의 희노애락을 담다

인생을 치열하게 살아보고 느낀 점

무언가 생산적이고 발전적인 활동을 몰입해서 열심히 해본적이 없습니다.

올드보이에 나오는 오대수의 자조적 이름풀이처럼 '오늘만 대충 수습하며 사는' 태도로 인생의 대부분을 채웠습니다.

공부도 안 해서 대충 성적 나오는대로 지방대 들어갔고, 대충 학점받아 졸업했고, 대충 들어갈 수 있는 회사 들어갔고, 회사에서 일도 대충 하다 퇴근하는 등 인생 전반을 대충 살아왔죠.

 

늘 냉소적인 태도로 삶을 살았습니다.

열심히 사는 사람을 보면, '왜 저렇게 오바를 해?', '뭔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저리 아둥바둥 사는지. 어차피 100년도 못사는 인생인데 대충 편하게 살지 쯔쯔..' 같은 비아냥을 일삼고는 했죠.

 

그러던 어느 날, 몸담던 회사가 매출이 줄더니 곧 폐업한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운영사정이 안 좋아졌습니다. 곧 구조조정 방안에 따라 상사직원 몇이 1차로 희망퇴직 대상자로 지정이 됐습니다. 

 

얼마 전까지 곁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하루 아침에 모가지 날아가는걸 보고 큰 위기의식을 느꼈습니다. 다음 차례는 나인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거든요. 회사 입장에서 보자면 일도 대충해서 성과도 그닥인데 연차는 쌓여서 임금지출만 많이 나가는, 회사재정에 방해되는 제거타겟 1순위는 저인게 자명했습니다.

 

그래서 목에 칼이 들어오기 전, 어떻게든 살 길을 모색하고자 바둥거렸습니다. 이력서를 50군데 넘게 돌려봤지만 연락 오는 곳은 한 군데도 없었습니다.

 

생각해보니 당연했어요. 적지 않은 나이에 내세울만 한 이력이나 학력, 능력, 자격 등 모든 스펙이 함량 미달이었으니까요. 자존감은 바닥으로 떨어졌고, 아무 노력 없이 나태하게 살아온 것을 처음으로 자책했습니다.

 

그 즈음 울적해서 매일같이 술친구들 불러내 대포집에서 소주까고 신세한탄만 하고 살았는데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마냥 그렇게 있을 수만은 없겠더라고요. 이대로라면 변하는게 아무 것도 없을테니 현 시점에서 나에게 필요한 것을 고심했고, 인생 제2막을 위한 새 진로를 정했으며, 그에 맞는 자격증 공부를 하기로 결심했어요.

 

공부는 고3때를 마지막으로 근 20년만에 해보는 것이었고, 더욱이 누가 시켜서 억지로 시늉만 하는게 아닌, 스스로가 원해 자발적으로 하는 진짜공부는 최초로 해보는 것이었죠.

 

처음에는 죽을 맛이더군요. 내츄럴 본 놈팽이로서 퇴근하면 쇼파에 파묻혀서 플스 패드부터 잡던게 굳어진 루틴인데 그때부터는 책상에 앉아 재미대가리 없는 외계어들과 씨름해야 된다는게 말이죠. 하지만 실직해서 굶어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 책을 볼때의 괴로움보다 크기에 매일 퇴근하고 새벽 1시까지 책상에서 엉덩이 떼지 않았고, 주말에는 매주 도서관에 가서 버서커 모드로 임했습니다.

 

그 결과는.

자격증 취득
국가 자격증 취득

비교적 단기간에 이런 자격증들을 취득할 수 있었습니다. 인생 처음으로 나름 치열하게 노력이란걸 해서 보상을 받아본거죠.

 

자격증 취득 후, 간보기용으로 몇군데 이력서를 돌려봤는데 이번에는 상황이 180도 바뀌어서 내는 족족 면접 요청이 오더군요.

 

공교롭게 그 즈음에 희망퇴직 대상자로 지정되어 호기롭게 미련없이 싸인하고 나왔습니다. 예전같았으면 질척거리면서 끝까지 붙어있으려 했을텐데 이제는 믿는 구석이 생겼으니까요.

 

그렇게 새 회사로 들어갈 수 있었고 새로운 인생 제2막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왜인지 그때까지 나태하게 살아온 것에 대한 회한이 스스로에 대한 부채의식처럼 남아있었습니다.

 

'한번 일에도 미쳐보자.'

 

지금까지 살아왔던 제 가치관과 반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치를 발휘해 일에도 몰입해보기로 했습니다. 인생의 전반부는 대충 살았으니, 한번쯤은 열정을 가지고 적극적인 태도로 살아보고자, 그것을 나름의 도전과제로 정하고 그에 따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감사패 취득

난생 처음 이런걸 받아봤습니다.

살면서 받아본 기억나는 트로피는 블러드본 100% 깨고 받은 플레티넘 트로피 말고는 없었거든요.

 

늘 아웃사이더이자 주변인으로, 놈팽이로, 투명인간으로, 오늘만 대충 수습하며 살던 인생대충러가 이런걸 받다니 감개무량했죠.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인정이란걸 받아본 것이니까요.

 

무언가 인생이 바뀌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불가항력한 힘이, 그리고 운명이 나를 열심히 사는 사람으로 살게끔 멱살을 끌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또한 그 느낌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이때부터 어떤 관념 하나가 머릿속을 잠식하며 자리잡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남과 비교했을때 뛰어난 사람이 위대한게 아니라, 과거의 자신보다 나은 사람이 진정 위대한 사람이라는 헤밍웨이의 명언처럼 하루하루 어제의 나보다 발전하는 사람이 되기위해 앞으로의 인생은 대충 살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어요.

 

올해 초에 개봉한 퍼스트 슬램덩크를 보고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만화책으로는 셀 수도 없이 봤던거지만 원래 문학예술 작품이란게 당시에 처해있는 나의 상황에 따라 다시보면 달리 느껴지는 부분이 있잖아요. 새삼스럽고 쌩뚱맞지만 당시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북산의 저 멋진 다섯 친구들이 미래에는 모두가 농구로 성공하지 못할지도 모르지. 무릇 인생이란게 마음 먹은대로만 풀리는게 아니니까. 혹여나 인생이 잘못 풀려 불운하게 살다가 세월이 흘러 생을 끝마치게 될 시점이 온다면, 육신은 늙고 쪼그라들어 볼품없어 보일지라도, 뛰고있는 심장 한켠에서 한때 찬란하게 빛났던 코트 위 영광의 순간을 떠올리며 웃으면서 인생을 끝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망상을 해봤습니다.

 

그리고 그 물음을 제게도 던져봤어요. 그리고 결심했습니다. 저도 언젠가 인생의 짧은 소풍을 끝마치고 이 세상과 작별할 시간이 올텐데, 그때 꺼내보고 웃음지으며 갈 수 있는, 가슴 속 서랍 한켠의 찬란한 업적 하나는 만들어야겠다 라고요. 그게 없으면 눈을 감을때 너무 후회스러울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다음 목표를 향해 더욱 치열하게 살기로, 더 있는 힘껏 내 모든걸 쏟아내서 치달아보기로 했습니다. 그 목표가 바로.

전기 안전 기술사

기술사 도전입니다.

북산고가 산왕공고라는 도저히 넘지 못할 것 같은 산에 뛰어들었듯이, 저도 뛰어들어서 박터지게 싸워보려고요.

 

한번 사는 인생인데 100살도 못살더라도 내가 가진 모든걸 태워서 한번만이라도 찬란한 불꽃을 활활 태워보고 이 세상 후회없이 떠나기 위해 저는 다시 고행의 길을 택했습니다.

 

휴일에는 여전히 도서관을 다니고요. 친구들은 최근에 술자리도 피해다니는 저를 보고 왜 그렇게 고생을 사서 하고있냐. 어느정도 자리잡았으면 그냥저냥 편하게 살면 되는데 왜 그걸 굳이 하려고 하냐고 합니다.

 

왜냐면.

난 지금입니다.

인생 후반전에 맞은 내 영광의 시대는 지금이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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