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꾼 - 인생의 희노애락을 담다

강지선 씨는 10년 전에 용역업체에 입사했다.

은행 경비원으로 일하게 된 그의 첫 업무는 지점장님 차 세차였다.

세차가 끝나면 은행원들의 책상을 정리했다. 고장 난 ATM을 수리하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이 중 은행 경비원의 업무에 해당되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용역업체는 업무 범위에 대해 설명해준 적이 없었고, 인수인계받은 대로 일할 뿐이었다. 

이렇게 열심히 하면 조금씩 나아질 거라 믿었다.

 

지선아, 돈 벌어서 어디다 쓰길래 맨날 돈이 없다 그래?
입사한 지 1년이 안 됐을 때, 가깝게 지내던 은행 서무 담당자가 그에게 물었다.


매달 경비원 인건비로 240만 원씩 용역업체에 주는데 무슨 소리야? 월급이 얼마 안 돼서 그렇다고, 100만 원 조금 넘게 받는다고 답했더니 서무 담당자가 깜짝 놀랐다.

 

132만 원. 그달 용역업체가 지선 씨에게 준 월급은 세후 132만 원,

은행에서 용역업체에 지급한 240만 원이 업체를 거치면서 132만 원으로 줄었다.

이 이상한 착취는 지선 씨만 당한 게 아니다.

 

2018년 화력발전소에서 산업재해로 사망한 고故 김용균 씨도 똑같은 방식으로 임금을 빼앗겼다. 용균 씨는 용역업체 소속으로 한국 서부발전에서 일했다.

중급 숙련 기술자였던 용균 씨 몫으로 원청이 하청에 지급한 직접노무비는 522만 원이었다.

직접 노무비

용역업체의 운영비 등이 포함돼 있지 않은, 100퍼센트 노동자에게 지급해야 하는 순수 인건비
하지만 2018년 11월 그의 마지막 월급명세서에 찍힌 실지급액은 211만 원뿐이었다.

하청업체를 거치며 311만 원이 사라진 것이다.

전혀 다른 공간에서 다른 일을 한 두 사람을 한데 묶는 것은 '간접고용'이라는 사슬이다.

간접 고용

원청 <---도급계약----> (용역업체) <-> 노동자
사용자가 노동자와 직접 근로계약을 맺었던 과거와 달리. 요즘은 사용자가 용역업체와 계약을 맺고 그 업체들이 고용한 노동자들의 노동력을 제공받는다.

중간착취는 두 계약의 빈틈에서 발생한다.

조사 결과, 용역업체들이 원청에서 받은 인건비 중 실제 노동자에게 준 돈은 3~25%에 불과했다. 많게는 97%를 중간에서 가로챘다는 뜻이다.

도급계약서에 적힌 인건비를 노동자에게 다 주지 않는 것은 명백한 위법 아닐까?

그런데 전문가들은 뜻밖의 대답을 했다.

“용역업체가 최저임금만 위반하지 않았으면 법적으로 개입할 여지는 없어요.”

얼마를 떼어먹든 최저임금만 지키면 그 모든 중간착취가 합법적이라는 얘기였다.

 

최저임금이 대폭 인상되면  용역업체는 식대, 교통비, 연차수당 등 각종 수당을 하나씩 없애 월급 총액을 동결시켰다.
또한 노동자와 1, 2년마다 근로계약을 새로 맺어 월급에도 연차가 쌓일 수 없게 만들었다.

 

이렇다 보니 많은 노동자의 월급이 100만 원대에 갇혀 있다.

 

용역업체들은 원청이 지급한 돈에서 자신들이 떼어가는 금액을 '관리비라고 주장한다. 업체를 유지하고 일할 여건을 만드는 데 쓴다는 얘기다. 그러나 한 주차관리원은 주차관리소를 고쳐주지 않아 추운 겨울에 패딩과 양말을 몇 벌씩 껴입고 일해야 했고, 공장 노동자는 저가의 마스크를 쓰고 분진을 뒤집어써야 했다.

 

그렇다면 이렇게 떼인 돈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 것일까?

억대 연봉의 용역업체 대표

총 6개 용역업체 대표의 연 소득을 확인해본 결과, 이들의 소득은 그야말로 '억' 소리가 나는 수준이었다.
한 하청업체 대표는 연간 20억의 소득을 올리고 있었다.

 

서울 도시가스 검침업무 위탁사인 S업체 대표의 연봉은 8000만~9000만 원 정도로 추정된다. 반면 이 회사 소속 노동자는 월 190만 원(세후)을 받고 있다.

 

수많은 하청업체 사장이 안면몰수를 넘어 인면수심의 태도로 중간착취를 강행하는 이유는 바로 그들의 주머니를 채우기 위해서다.

 

근로기준법은 아직도 1953년 제정 당시에 머물러 있으며, 오늘날 실재하는 346만 명의 간접고용 노동자를 한 명도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

“당신 아니라도 일할 사람 많다.”

공장 노동자, 도시가스 검침원, 청소원, 경비원들은 오늘도 이 문장 앞에서 울분을 삼키며, 고된 현실을 묵묵히 감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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