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꾼 - 인생의 희노애락을 담다

농구선수 하은주

하은주는 한국의 여자 농구 선수이자 정선민의 뒤를 잇는 끝판왕 센터다. 2m 센터였던 김영희 이후, 한국 여자농구가 가진 정통 2m 센터. WKBL 무대에서 적수가 없는 센터. 하지만 동시에 한국 학원 스포츠의 병폐로 인해 고통받았던 아픈 기억을 가진 선수이기도 하다. 하승진의 누나로도 유명하다.

농구선수 하은주

아버지는 국가대표 농구 선수였던 하동기. 어릴 때부터 농구에 흥미를 느껴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농구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일찍부터 초등학교 무대를 평정했다. 그런데 키가 큰 선수들이 늘 가지는 고질병인 무릎 부상이 하은주에게는 일찍 찾아왔다. 초등학교 졸업할 무렵에 무릎 부상을 당했는데, 이미 연골이 닳아 없어지는 중상이었다.

아프다고 하소연 하였지만 감독과 선생님들은 참고 이겨내야 훌륭한 선수가 될 수 있다며 전혀 걱정해 주지 않았다. 6학년 가을쯤 부모님이 대회를 보러왔는데 무릎 부상을 입고 엉성한 포즈로 경기를 뛰는 하은주를 다들 이상하게 생각했다.

몸상태를 걱정해주지 않고 선수를 어떻게든 경기에 뛰게 하려던 어른들

이 이야기는 은퇴직전의 선수 얘기도 아니고 불과 초등학교 6학년때 벌어졌던 일이다. 병원에서는 선수 생활이 끝날지도 모르니 수술을 빨리 해야 하는 입장이었는데 감독과 코치진들은 그런 점을 전혀 배려해주지 않았고 하은주를 오로지 경기에 뛰게 해서 성과만 내려 하였다.

중학생이 되서야 수술을 받게된 하은주.

결국은 경기란 경기는 다 뛰고 중학생이 되서야 아빠가 데려가서 수술을 받게 된 하은주. 하지만 수술을 받은 후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게 되는데...병실에서 홀로 농구부 유니폼을 입고 있던 어린 시절의 은주를 아무도 병문안 와주지 않았다. 입원하고 있는동안 아무도 안왔는데 알고보니 감독이 하은주의 선수생활이 끝났다고 생각해 같은 팀 선수들한테도 하은주 만나는것을 막았던 것이다. 하지만 재활만 잘하면 선수로 충분히 뛸 수 있는 의사 소견이 있었다...그 일 이후부터 학교와 농구에 정이 떨어진 하은주는 어른에 대한 않좋은 인식이 생겼다.

일반인으로 살아가기엔 너무 훌륭한 체격 조건

주변인들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에 너무나 실망한 하은주는 그때의 트라우마로 농구계의 지도자들은 누구도 믿지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선 후배간의 상명 하복과 집합, 선생님들한테 맨날 얻어 맞는 생활에 지쳐 다시 일반 학생으로 돌아온 하은주는 초등학교 때부터 공부 욕심이 많아서 조용하게 그냥 공부만 하고 방과후에는 애들이랑 떡볶이 사먹고 놀러다녔다고 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평범한 학생으로서 삶이 살아질 수 있을 줄 알았으나...

중 3이 되어 키가 195cm가 되자 학교의 농구팀에서는 다시 하은주를 탐내기 시작했고 시든때도 없이 찾아와 다시 선수로 돌아오라고 달달 볶았다고 한다. 

다른 학교로 전학간 하은주 적반 하장으로 선수 포기각서를 쓰라는 농구 감독

하은주를 다시 선수로 끌어들이기 위해서 하루가 멀다하고 회유를 했다고 한다. 도저히 이런 상황을 버틸 수 없었던 하은주는 어쩔수 없이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려고 하는데...다른 학교로 가서 농구를 계속하려고 한다 생각한 농구감독은 선수 포기각서를 쓰고 가라는 말도 않되는 상황을 만들었고, 하은주는 그때가 중3 1학기라 한학기만 다니면 졸업이라 그냥 참고 다녔어도 되지만 너무 힘들게 한 나머지 선수 포기각서를 써버리고 학교를 나오게 된다.

운동 선수를 받아주지 않았던 주변 학교들

막상 전학을 가려고 부모님들이 여러 학교를 수소문해 봤으나 선출이었던 하은주는 학교 내신을 떨어뜨릴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지 주변 학교에서 전부 받아주지 않았다. 다행히도 동생 하승진이 다니던 학교에 하승진의 빽으로 간신히 전학을 갈 수 있게 되었다.

선수 등록이 말소된 하은주

각서 하나를 썼다는 것만으로 이전 학교의 농구 감독과 관련인들은 협회를 통해 하은주의 선수 등록을 말소 시켜 버린다. 더 이상 어디에서도 경기를 뛸 수 없게 해버린 것...정말 웃긴 점은 선수 포기 각서라는 건 법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법적인 근거도 아무것도 없는 것인데 그걸 억지로 받아냈고 협회에 찾아가 선수 등록을 말소 해버리는 악의적인 일을 해버린 것이다...

한국을 떠나 일본으로 간 하은주

한국에서 선수로 뛰기 힘들어지자 재활과 농구를 함께할 방법을 찾다가 결국은 일본을 선택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로 국내에서는 어떤 것을 해도 패배감만 들었던 하은주는 아예 이들과 상관없는 곳에서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에 나름의 도피처로 일본을 선택하게 된것이다. 운이 좋게도 그 시절의 일본은 한국보다 재활 시스템이 잘 되어있었고, 제대로 된 병원도 있었다. 또한 학교에 상주하는 트레이너도 있어서 밤에 아프면 치료부터 물리치료까지 다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학교 시설도 재활과 운동하기에 더 할 나위 없이 좋은 환경이 제공되었다고 한다.

좋은 환경을 제공 받기 위한 일본 귀화

하은주에게 일본에서 치료와 재활을 병행하면서 농구와 학업을 동시에 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당시 일본 고등학교에서 제의가 들어왔다. 하지만 당시 일본 여자농구에는 외국인 선수 제도가 없었기 때문에 농구를 계속하려면 일본 국적을 취득하는 수 밖에 없어서 결국 귀화를 선택하게 되었다.

한국으로 돌아와 레전드가 된 하은주 선수

여러가지 어려운 상황에서 우여 곡절끝에 일본으로 간 하은주. 일본에서 그 동안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결국에는 다시 한국으로 들어와 국가대표 선수생활을 하게된다. 그 후 아시안 게임에 출전해서 메달도 따고 여러가지 업적을 이루었고 현재는 한국 농구의 레전드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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