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꾼 - 인생의 희노애락을 담다

프레드 F. 오 (Fred F. Ohr,1919.7.19~2015.9.16)

군번 0-725780

가정사

1915년 7월 19일 미국 오리건주 재미교포 2세. 한국 이름 오종구. (그의 아버지인 오원주 씨는 양반가 자제였으나 일제의 탄압을 피해 미국 이민을 택함.) 그는 5살 때 우편물 수송 복엽기를 보고선 창공을 나는 꿈을 키우게 됐다. 하지만 당시 유색인종이 비행기 파일럿이 되는 것은 하늘의 별을 따는 수준의 가능성보다 낮았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는 '간절히 바란다면 분명 이뤄질 거다'라며 힘을 북돋아주었다.

미군 입대 신청한 고등학생 시절의 오

고등학생이 된 프레드 오는 파일럿이 되기 위해 처음으로 육군 모병소를 찾아갔다. (이 당시 미국에는 공군이 없었고 육군 항공대, 해군 항공대가 있었음.) 하지만 그를 본 모병관은 단 한마디도 안 하고 나가는 문을 가리키며 쫓아냈다. 일 년 뒤, 이번에는 해군 모병소에 갔다. 모병관은 저번보다 친절했지만 결국 일반 수병이 아닌 사환으로 복무할 것을 권유받자 발을 돌려 나왔다.

1938년, 미국도 전쟁의 기운 때문에 대규모 징집을 시작했고, 프레드 오는 파일럿은 무리니까 그냥 군인이라도 되자며 이번엔 와이오밍 주 방위군에 입대 신청을 했다. 그곳은 기병연대였는데, 각자 타야 할 말을 한 마리를 개인이 키워야 했다. 프레드 오는 아버지의 농장에 있던 말 한 마리를 끌고 모병소에 가서 결국 입대 허가를 받았다. 프레드 오는 그곳에서 라디오 통신병으로 근무했다. 이때 프레드 오는 연방정부의 지원 하에 대학에 진학하여 공부도 하면서 중사 계급을 달았다.

파일럿의 꿈을 버리지 않은 프레드 오에게 찾아온 우연한 기회

그러던 어느 날, 같은 부대 동료가 육군 항공대 시험을 보러 가는데 프레드 오에게 같이 가달라고 부탁했다. 프레드 오는 처음에 거절하였으나, 결국 부탁을 이기지 못하고 면접장까지 동행했다. 친구가 면접을 보러 간 사이, 프레드 오는 벤치에 앉아 신문을 보며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그런데 지나가던 대령이 프레드 오를 보더니 따라오라고 하더니 즉석에서 지원 신청서를 쓰게 했다. (프레드 오 는 그 대령이 왜 그랬는지 이유는 몰랐다고 한다. 그냥 동양인인 자신이 용기 있게 파일럿에 지원하러 온 거라고 착각하여 그랬을 거라고 추측했다.) 면접장에 들어선 프레드 오는 어린 시절 파일럿 이 되고 싶었던 꿈이 다시 떠올라 열정적으로 면접에 임했다. 그리고 결국 합격하여 애리조나의 비행학교에 입학한다. (아쉽게도 같이 간 친구는 색맹임이 드러나서 탈락했다.) 그리고 1942년, 비행학교를 졸업한 프레드 오는 파일럿으로 임관했다.

파일럿이 된 프레드 오

프레드 오는 북아프리카 전역의 튀니지에 배치되었으나 일본인과 닮은 외모, 인종차별 때문에 한동안 정비반 소속으로 지상근무를 해야만 했다. 하지만 1943년, 그에게도 기회가 찾아와 제52 전투비행단 '아메리칸 비글'로 전출되어 꿈에 그리던 전투기에 탑승하게 된다. (그가 파일럿이 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초창기 연합군의 파일럿 숫자가 너무나도 부족했던 점도 한몫했다.)

첫 전투기 - 스핏 파이어

그의 첫 전투기는 영국제 스핏파이어였다. 프레드 오는 이 기체를 타고 첫 출격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나치 독일의 Ju-88을 격추한다. 북아프리카 전역을 시작으로 지중해 전역에 참전하게 된 프레드 오는 미국제 P-51D 무스탕으로 기종전환을 한 뒤 적기 6기를 격 추하여 에이스 파일럿으로 등극한다.

파일럿의 전설이 되다

프레드 오는 대전중 155회 출격, 적기 6기 격추, 17기 지상 파괴 등 눈부신 전공을 세웠으며 은성 무공훈장 2회, 수훈 비행 십자훈장 2회, 동성무공훈장 1회, 공군 수훈장을 17회 수여받았다. 최종적으로 비행대대장까지 역임한 프레드 오는 1944년 소령의 계급으로 전역했다.

프레드 오의 전용기 P-51 무스탕 "Marie"

특유의 노란 꼬리 날개 도색이 포인트다

전역 이후의 삶

전역 후 미국으로 돌아가 UC 버클리, 노스웨스턴 치과대학을 졸업해 시카고에서 치과의사로 평범하게 살다 은퇴 후 2015년 타계했다. 그의 치과는 시카고 한인들 사이에서 꽤 유명했으나, 그가 전투기 에이스였던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프레드 오는 2021년 현재까지도 미군 최초의 동양인 에이스 파일럿으로 기록되고 있다.

(미군 최초의 한국계 파일럿은 미 육군 항공대 소속으로 1차 대전에 참전한 이응호라는 분이 따로 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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