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꾼 - 인생의 희노애락을 담다

이건 방금 전 엄마가 친구네 과수원에서 사 온 복숭아를 까먹으며, (4박스를 사니 상품가치는 떨어지지만 맛은 좋은 복숭아를 산 것보다  2배는 더 많이 덤으로 챙겨준 건 자랑) 비도 오니 무서운 얘기를 해달라는 제 부탁에 할머니께서 해주신 직접 겪으신 일임. 

때는 바야흐로 한국전쟁 뒤 몇 년이 지나고 어느 정도 일상으로 돌아올 즈음으로, 할머니께선 방년 십오 세 무렵의 어느 한 무더운 여름밤 사촌 언니분과 이모 등 친지들과 함께 멱을 감으러 가셨다고 함.


멱을 감고 돌아가는 길, 그즈음의 소녀들이 그렇듯 할머니께선 한 살 차이가 나던 그 언니분과 손을 꼭 붙잡고 뭐가 그리도 신나는지 정신없이 수다를 떨며 뚝을 따라 어른들 무리 속에서 집으로 가고 있었다고 함.


그렇게 집으로 가고 있던 도중 할머니의 언니분과 할머니는 고무신을 두고 온 것이 생각났다고 함. 아차 싶던 두 분은 이모분들께 알려서 혼나기도 무섭고 평소 자주 가던 길이기도 하니 무섭지도 않았기에 두 분만 몰래 서둘러서 신발을 가지러  가자고 했다고 함.


자연스레 어른들 무리 뒤쪽으로 가기 위해 속도를 줄였고 그렇게 가장 뒤쪽으로 뒤쳐지게 되자 재빨리 무리에서 이탈하시고는 신을 가지러 가셨다고 함. 어른들 없이 둘만 남게 되었음에도 둘은 걱정은커녕 오히려 둘만 있다는 왠지 모를 오붓함과 해방감에 더욱 수다에 박차를 가하며 걸었고, 걷다 보니 어느새 멱을 감았던 부분에 다다랐다고 함.


그러자 두 분의 시야에 그 신발이 보였고, 신발을 보게 되자 수다에 정신이 팔려 이미 일행이 많이 멀어진 것을 깨닫게 되어 더 혼나기 전에 빨리 무리로 복귀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함. 그렇게 각자 신발을 챙기고 있는데 그때 온몸이 시커멓고 머리는 아주 긴 장발인데 웬 싸리 빗 같이 뻣뻣한 느낌의 키는 구척같이 큰 사람 형상의 물체가 뚝 저 반대편에서 걸어오고 있었다고 함. 한눈에 보기에도 할머니께서는  사람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함.


마음속으로는 도망쳐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무슨 이유에서 인지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가 않았다고 함. 그 구척이나 되는 물체가 분명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는데 이상하게 벌써 코앞에 와야 할 것 같지만 그 물체는 다가오는 느낌만 있지 가까이 오지는 않았다고 함. 무엇인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 할머니는 그제야 이성을 찾고 언니 분부터 데리고 도망가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함.


그런데 그 언니분께서는 있어야 할 자리에 보이지 않았다고 함. 더욱더 큰 불안을 느낀 할머니께서는 주위를 둘러보셨는데, 언니분 께서는 걸어오셨던 둑길 위에 올라가 맨발인 채로 무릎을 가슴까지 차올리며 뛰어다니셨다고 함. 그제야 그 구척의 물체는 도깨비고 언니분께서는 도깨비에 홀린 것이라고 생각이든 할머니는 어른들을 부르기 위해 언니분을 꼭 껴안고 나서 울며불며 사람 살리라고 소리를 질렀다고 함.

 

울며불며 언니한테 정신 차리라고 소리도 질러보고 사람들도 불렀는데 할머니는 언니분께서 기 행동을 보이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고 함. 아직도 그때 언니분께서 뛰는 것을 생각하면 소름이 돋는데, 당시에 두 분만 계실 때 언니분께서 그렇게 펄쩍펄쩍 뛰는 것을 바로 옆에서 껴안고 있자니 너무나도 무서웠다고 함.


더군다나 그 구척 물체는 아직 사라졌는지 아닌지도 모르는데 언니가 그것에 홀렸다고 생각하니 정말이지 죽었다는 생각뿐이었다고 함. 언니는 자신보다 키도 작고 당시 영양공급도 힘들었기에 삐쩍 말랐었는데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상대를 끌어안은 자신도 펄쩍펄쩍 뛰어질 만큼 괴력을 발휘하며 기 행동을 보였다고 함.


무섭지만 이 모든 일의 원흉인 그것이 아직도 있는지 살펴봐야겠다고 생각한 할머니는 그것이 있던 방향을 주시했다고 함. 그것은 더 이상 이쪽을 올 필요가 없기라도 한 듯 반대쪽으로 방향을 바꾸고 지금껏 그랬듯 반대 방향으로 빠르게 사라져 갔다고 함. 이내 그것은 사라졌고 언니도 괜찮아질 거라 생각했지만 할머니의 예상과는 달리 언니분은 그 기행동을 계속 보이며 둑을 왔다 갔다 했다고 함. 그렇게 둑을 몇 번이고 왔다 갔다 하던 언니는 구척 그것이 사라진 방향으로 방향을 정한 듯 그쪽으로 펄쩍펄쩍 뛰어갔다고 함.


그전까지 뚝 방위를 돌던 행동은 사전 의식이라도 된 양 방향을 잡은 언니는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처럼 더욱더 빠르게 그 물체가 사라져 간 방향으로 가려했다고 함. 할머니께서는 그렇게 꽤 오랜 시간 언니에 의해 동구 밖까지 끌려갔고 둘 다 지칠 즈음 기진맥진해서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던 할머니께선 이대로 언니를 놓치면 영영 못 볼 것만 같은 생각이 드셨다고 함.


엉엉 울면서 언니에게 정신 차리라고 애원하며 무명 저고리를 벗어 언니의 다리와 자신을 묶으셨다고 함. 그렇게 정신을 잃고 나서 아침이 밝았고 할머님과 언니분은 동구 밖의 장승 있는 곳까지 와 있었고 자신들이 없어진 것을 알아차린 가족들에 의해 발견되어 할머니 자신은 며칠 사경을 헤매다가 회복이 되었는데 언니분께서는 정말 도깨비에 홀린 것인지 정신이 나간 상태로 오랜 시간 지냈다고 함.


집안 어른들께서는 언니분을 고치기 위해 절에도 보내보고 한의사한테도 데려가 보고 무당을 찾아 굿도 해보고 정말 안 해본 짓 없이 정신을 되돌리기 위해 다해보았다고 함. 갖은 방법에도 별 차도가 없던 언니분의 증세에 가족들도 거의 포기 상태에 이르게 되었는데, 소문을 들은 옆 부락 유가 집성촌의 한 노촌부가 자신도 어렸을 적에 구척 귀신에게 홀린 사람을 본 적이 있다면서 복숭아 나뭇가지로 잡귀를 쫓아보라고 귀띔을 해 줬다고 함.


그래서 마을 어귀에서 주인에게 양해를 구하고 그 나뭇가지를 꺾어 끓여도 먹이고 속바지에도 바느질해 입히고 그것으로 때리기도 하며 노력을 했다고 함.  그 정성 덕인지 다른 것엔 차도를 보이지 않던 언니분께선 빠르게 차도를 보이셨고 나중엔 그 당시는 기억을 못 하시지만 정상으로 돌아와 결혼도 잘하셨다고 함.

 

이 이야기를 복숭아를 드시다가 내가 무서운 얘기 해 달라고 조르니 해주셨는데 생각보다 오싹했음.
그 동구 밖의 장승 부근에도 지금처럼 큰 개념의 과수원이 아닌 작은 규모의 복숭아나무 과수원이 있었다고 함. 결과론적인 이야기 일진 몰라도 할머니 생각엔 그 복숭아나무 때문에 동구 밖에서 언니가 멈춘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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