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꾼 - 인생의 희노애락을 담다

도이 무쓰오(21)는 1917년 3월 5일 오카야마 현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그가 어릴 때 폐결핵으로 죽었고, 그와 그의 누나는 할머니의 손에 길러졌다. 원래는 외향적인 성격이었으나 1934년에 누나가 결혼하게 되자 집안에만 틀어박혀 지내는 '히키코모리가 됐다.

도이는 일본의 전통문화인 '요바이 풍습'(몰래 이웃집에 들어가 성관계를 하는 것)에 심취해 있었다. 1937년 그는 징병검사를 받으면서 폐결핵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로 인해 징병 검사에서 불합격했다.

 

도이가 결핵에 걸렸다는 소문은 금세 마을 사람들에게 퍼져나갔다. 그때부터 여자들이 도이를 외면하기 시작했다. 도이의 가슴속에서 여자들에 대한 증오가 싹트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을 무시하고 외면하는 여자들을 죽이겠다고 마음먹는다. 그리고 그 증오는 점점 커져만 갔다. 그는 범행을 위해 수렵 면허를 취득한 뒤 수렵용 총기를 사들여 사격 연습을 했다.

어느 날 집에 경찰들이 들이닥쳐 가택수색을 하면서 일본도와 총 등 무기를 압수당했고, 수렵면허도 취소됐다. 도이는 지인을 통해 다시 엽총과 탄환을 구입하고, 도검류 수집가에게 일본도를 몰래 사들였다.

 

1938년 5월 20일 저녁 도이는 전기선을 잘라 마을을 어둠에 빠뜨렸다. 21일 새벽 1시 30분 그는 자고 있는 할머니의 목을 도끼로 내리쳤다. 그런 다음 두 개의 전기등을 머리에 둘렀다. 손에는 일본도와 비수, 개조한 9 연발 브라우닝 엽총을 들었다.

그는 요바이를 하던 때처럼 이웃집을 찾아다니며 끔찍한 살인극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웃집에 쳐들어가 사람이 보이면 보이는 대로 칼을 휘두르고 총을 발사해 죽였다.

 

이 과정에서 마을의 11채의 집에 쳐들어갔다. 대부분 피해자는 16세 미만의 어린이나 미성년자들이었다. 그렇게 그는 1시간 30분 동안 마을을 다니면서 30명(즉사 28 | 명, 중상을 입고 나중에 사망한 사람 2명)을 살해하고, 중상자 1명, 경상자 2명 등 합계 33명이었다. 이로 인해 쓰야마 시 외곽의 니시 카모 마을 사람의 절반 가까이가 죽었다.


이후 도이는 마을에서 3.5km 떨어진 산의 꼭대기에 올라가 유서를 썼다.
유서에는 범행 동기를 그와 교제하다가 다른 마을로 시집간 여자가 다시 친정으로 돌아온 걸 보고 범행을 생각하게 됐다고 적었다.

 

실제로 그는 그 여자를 죽이려고 한 것 같지만, 그 여자는 도망쳐 버렸고 애꿎은 가족들만 살해됐다. 또한 자신을 괴롭힌 마을 사람을 죽이려 했지만, 이사를 가거나 출타한 탓에 엉뚱한 사람들을 죽였다고 자책하는 내용도 담겨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할머니를 살해한 이유는 “살인자의 할머니로 살아가게 할 수 없어서”라고 적었다.

이러한 내용의 유서를 쓴 도이는 엽총을 자신의 가슴에 대고, 방아쇠를 당겨 심장을 쏴 자살했다.
그의 시체는 이튿날 아침에 발견됐다. 이 사건으로 일본이 발칵 뒤집혔다. 그 후 범인의 이름을 따서 '도이 무쓰오 사건' 또는 지명을 따서 '쓰야마 사건’ ‘츠야마 30인 살인사건' 등으로 불린다.

 

1983년에 개봉된 영화 <오밤중의 아들>의 모티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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