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꾼 - 인생의 희노애락을 담다

창밖에 날이 희미하게 밝아옴을 느낍니다.

 

이마에 손을 짚고 어제의 행동에 대해 자신에게 반문해 봅니다.

 

옆에는 이쁜이 조장이 작은 어깨를 드러낸체 쌔근쌔근 잠들어 있습니다

 

그녀의 숨결에 따라 우윳빛 가슴도 천천히 출렁입니다

 

이불속에 드러난 잘록한 허리곡선과 골반라인을 무심코 바라보고

 

우유빛 가슴골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보니 참 보드랍습니다

 

그세 그녀는 잠에 깨었는지 이리저리 뒤척이다

 

제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마른 음성으로 속삭입니다

 

' 조금만 더 자요..나 아직 피곤해..'

 

벽시계를 보니 아직 출근하긴 이른 시간입니다..저도 따라 잠이 듭니다

 

 

 

'뚜뚜뚜..뚜뚜뚜...'

 

얼마간을 더 잤을까..알람시계가 웁니다 눈을 반짝 뜨고 고개를 돌려보니 그녀는 없었습니다

 

긴 한숨을 쉬고 침대에 몸을 일으켜 봅니다

 

방 구석 어디에도 그녀의 흔적 하나 없이 말끔하게 치워져 있습니다

 

 

 

애시당초 그녀의 존재가 없던것 처럼 느껴지는것은 왜일까요..

 

지난 밤 벗어던진 나의 옷은 잘 개여져 있고 상의는 옷걸이에 반듯하게 걸려있습니다

 

그 밑에는 작은 밥상이 신문지에 덮여 자리 잡고 있습니다

 

천천히 다가가 신문지를 걷어 봅니다.

 

작은 뚝배기에 담긴 계란탕과 물김치, 그리고 계란 후라이가 놓여 있습니다

 

아직도 온기가 남아있는걸로 보아 금방 차려놓고 나간거 같습니다

 

밥상 위에 올려진 작은 쪽지가 보입니다

 

큰컵에 담긴 물을 마시며 쪽지를 읽어봅니다

 

'xx씨. 먼저가서 미안, 밥은 솥에 올려 놨어요 다되면 꺼내서 드시고 가세요.'

 

.....

 

 

그날 하루종일 사무실에서 넋을 놓고 있었습니다

 

앞으로의 일에 대해 조금은 불안한 기분이 듭니다

 

미리 걱정하는것 만큼 바보 짓도 없다며 스스로를 다독여 보지만

 

앞선 불안감은 떨칠수가 없습니다

 

 

팀장의 지시로 다시 현장에 가게 됩니다

 

몇달간 다니던 현장인데 오늘따라 가슴이 더 떨려 옵니다

 

현장 사무실에 들려 반장에게 샘플을 건네 받고 커피를 한잔 마십니다

 

대화도중 현장쪽을 슬쩍 둘러보니 이쁜이 조장이 보이질 않습니다.

 

짐짓 무관심하게 반장에게 물어봅니다

 

'이쁜이 조장 어디갔어요? 바쁜가..안보이네요..'

 

'아..오늘 출근하자마자 휴가내고 바로 나갔어..'

 

'왜요?"

 

'아..몰랐어? 이쁜이 조장, 아버지 퇴원하셨다고 남원으로 바로 내려갔어.'

 

'퇴원이라니 그럼 다행이네요 뭐..'

 

'다행이 아니지...지난 달 수술실에 들어갔는데 그냥 덮고 나온거래..

 

지금까지 치료만 받다가 어제 퇴원시켰나봐...준비하란 얘기지..'

 

'병명이 뭐래요????'

 

'췌장암.'

 

'.......'

 

일주일이 지났지만 그녀에겐 소식이 없습니다

 

일부러 현장에 들려 어떤 소식이라도 듣고 싶었지만

 

이쁜이 조장의 아버지 병세가 매우 안좋아 휴가가 더 길어질것 같다는 말 뿐..

 

그저 마지막 가시는길을 지키려 한다고 합니다

 

가끔식 그녀가 술취할 때면 들려주는 아버지는 그다지 좋은 인상이 아닙니다

 

늘 술에 취해 있었고 잦은 부부싸움과 어린 동생들에게 자주 손찌검을 했다는 정도.

 

장녀로써 철들자마자 가사와 학업, 그리고 동네 잡일을 하여 번 푼돈으로

 

생활하는 것 외에 그녀의 아버지도 어머니도 생활능력이 거의 없다시피 했답니다

 

좁은집에서 늘 투닥거리며 싸우는 어린 동생들을 키우며 살아가다 보니

 

공교롭게도 자신이 가장 싫어했다는 아버지의 손버릇을 그대로 배워 화가나면

 

말보다 손이 먼저 올라온다고 합니다

 

동생들이 가장 좋아하면서도 가장 무서워하는 아버지의 역할을 그녀는 살면서 배운거라고 합니다

 

 

 

이러구러 시간은 흘렀지만 난 그녀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귀로 넘기며 작은 손으로 입을 막고 해맑게 웃는 그녀의 모습과

 

첫키스의 따뜻한 감촉 그리고 그녀와 함께 보냈던 지난 밤을 생각해보면 

 

그 아련함에 가슴 한컨이 서늘해짐을 느낍니다

 

그렇게 침대에 누워 수없이 맥주 풀링을 따며 그녀와 함께했던 시간을 멍하니 생각하다 

 

쓰레기봉투처럼 쓰러져 잠드는게 일상이었습니다

 

그렇게 또 얼마가 지날 무렵, 

 

모두가 잠든 새벽3시 지독한 숙취로 잠에서 깨어나 물을 마시는데

 

때마침 전화벨이 울립니다..

 

 

'여보세요'

 

'....'

 

아무말이 없습니다

 

'여보세요, 누구세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수화기 너머 와락 우는 소리가 들립니다

 

'xx씨..우리 아빠....돌아가신거 같아..너무 무서워'

 

그녀 입니다

 

더 이상 울음소리밖에는 들리지 않았고 

 

저 역시 수화기를 든채 할 말을 잊고 말았습니다 

 

...

 

 

 

이른 아침, 반장에게 건네받은 주소쪽지를 가로 세로로 접으며 멍하니 버스에 오릅니다 

 

고속버스를 타고 몇시간을 달리고 또 다시 작은 마을버스를 타고서야

 

장례식장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도시 외곽 한귀퉁이에 위치한 장례식장 주변은 온통 산과 논밭뿐이어서 을씨년스럽기까지 합니다

 

장례식장안에 봉투를 하나 집어들고 그녀 아버지의 성함과 상주의 이름을 찾습니다

 

104호 상주 전xx.

 

큰 호흡을 하고 장례식장에 들어섭니다

 

10평 남짓한 작은방을 둘러보니 문상객이라곤 초라한 회색점퍼를 입은 노인 한분과 

 

교복을 입은 그녀의 어린 동생들뿐 그저 횅하기짝이 없습니다

 

방 한쪽 귀퉁이에 마련된 작은 주방바닥에 아주머니와 작은 소리로 도란도란 얘기하는 

 

그녀가 보입니다

 

검은색 상복에 머리를 가지런히 빗어 넘긴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무언가를 열심히 말하고 있습니다

 

상복때문인지 그 작고 하얀얼굴이 더욱 하얗게 보입니다

 

대화하던 아주머니가 인기척을 느끼고 그녀에게 나를 가리킵니다

 

그녀가 고개를 돌려 저를 봅니다..

 

입가에 알듯말듯한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걸어 옵니다

 

 

'오느라 고생했지..'

 

'고생은....'

 

그녀가 살짝 웃습니다.

 

'이리와 아빠한테 인사해야지..'

 

그녀의 아버지에게 절을 올리는 동안 그녀와 동생들이 나란히 옆에 섭니다

 

참 많이 닮은 자매들 입니다 특히 둘째 여동생은 언니를 쏙 빼닮아 지구 반대편에

 

던져놓아도 한눈에 알아볼 정도 입니다..

 

 

'배고프지..밥 차려줄께 기다려'

 

그녀가 종종걸음으로 주방으로 달려가 접시에 이것저것 담아 내놉니다

 

조금 설익은 듯한 밥과 특이하게도 홍어탕이 국으로 나옵니다

 

차려준 밥을 먹는내내 그녀는 맞은편에 앉아 저를 물끄러미 바라 봅니다

 

나도 밥을 먹다말고 힐긋 쳐다봅니다

 

그녀는 또 고개를 돌리며 입을 막고 소리없이 웃습니다

 

'xx씨..."

 

'응.."

 

'우리 아빠가 xx씨 봤으면 되게 좋아했을텐데.."

 

'지금 봤자나..'

 

'죽은사람이 뭘 알겠어..하늘나라가서도 술이나 진탕 퍼마시고 있겠지'  

 

'ㅋㅋㅋ'

 

'웃지마, 이건 심각한 얘기야..'

 

'...'

 

밖으로 나오니 밤바람이 서늘합니다

 

그녀와 장례식장 앞 벤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얘기를 합니다 

  

 

'울 아빠 불쌍해..평생을 돈한번 제대로 못벌고 술만 마시다 갔지만..

 

뭐 그래도 좋은 분이셨어..'

 

'그래 사진보니까 인자해 보이시던데..술 좋아해도 다 나쁜건 아니잖아' 

 

'그렇게 생각해?'

 

'응..'

 

'고마워'

 

그녀가 나를 응시하더니 내손을 꼬옥 잡습니다 

 

그리고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말합니다

 

'xx씨..'

 

'응?'

 

'우리 아빠가 새벽에 돌아가실때 뭐라셨는줄 알아?'

 

'뭐라셨는데..?'

 

'내손을 이렇게 꼬옥 잡고 ...말했어.."

 

'우리 아기 나때문에 애썼네'

 

'...'

 

'그게 다야..그말 한마디 듣는데 이십년이 넘게 걸렸어..그리고 다 용서했어'

 

'....'

 

그렇게 이틀뒤 발인날 아침, 

 

화장터로 들어가는 시신을 바라보며 털썩 주저앉아 오열하는 그녀를 앉아주며 

 

하루를 더 머물렀습니다 내가 해줄수 있는거라곤 이거 밖에 없더군요

 

 

이튿날 작은 보따리 몇개를 나눠 들고 그녀가 집에서 나옵니다

 

떨떠름하게 우리를 바라보는 어린동생들과 아직도 채 슬픔 가시지않은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를 붙잡고 또 한참을 우셨습니다

 

제 손을 잡고 고맙다고 몇번이고 고개를 숙이시는 어머니를 보니 마음이 아픕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안, 그녀와 손을 잡고 나란히 앉아 차창밖을 내려다 봅니다

 

산도 논밭도 전신주도 그저 빠르게만 지나갑니다 

 

그녀는 내 허리를 감싸 앉으며 잠시 내 가슴에 얼굴을 묻습니다

 

 

'xx씨, 피곤해요?'

 

'아니 괜찮아'

 

'어서 빨리 집으로 가요..내가 맛있는 저녁 지어줄께..'

 

 

그리고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표정으로 그녀는 잠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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