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꾼 - 인생의 희노애락을 담다

 

 

새벽 2시.

 

모텔을 나와 새벽거리를 걷는내내 그녀도 저도 말이 없이 어색한 침묵만 이어졌습니다

 

묵묵히 걷던 정XX가 먼저 말을 겁니다

 

'XX선배, 저 이제 집에 들어갈께요'

 

'집이 어디에요?'

 

'oo동이요 여기서 그리 멀지 않아요'

 

'네..그럼 택시 잡아드릴께요'

 

근처에 택시가 설만한 곳이 없어 거리로 조금 나와 택시를 잡기로 했습니다

 

도로에 성큼나가 택시를 잡는동안 그녀는 뒤에서서 물끄러미 바라만 봅니다

 

몇대의 택시를 보내고서야 간신히 택시를 잡아 그녀를 태웠습니다

 

조수석에 고개를 디밀고 기사에게 집까지 잘 부탁한다는 말과 함께 만원을 건네주고

 

택시에 실린 그녀에겐 눈인사를 보냅니다 

 

택시가 출발할려는 찰라,

 

그녀도 무언가 작별 인삿말을 건내고 싶었는지 고개를 살짝 내밀고 뭐라 할려다가

 

택시는 그대로 출발해 버립니다..

 

 

 

그녀를 태운 택시가 출발하자 왠지 마음이 바빠졌습니다

 

행여나 이쁜이 조장이 기다리지나 않을까 하는 마음에 서둘러 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20여분을 부지런히 걸어 집에 도착해보니

 

현관문옆 창문은 불빛이 모두 꺼져 있습니다 

 

피로감이 몰려와 현관문을 열고 조용히 방안에 들어섭니다

 

어두컴컴한 방안엔 텔레비젼 특유의 고주파음만이 들리고

 

침대 구석엔 이쁜이 조장이 텔레비젼을 응시한채 무릎을 세우고 우두커니 앉아 있습니다

 

'많이 늦었네..'

 

짐짓 놀랐지만 태연히 옷을 갈아입으며 그녀에게 말을 건넵니다

 

'오늘 기숙사 안들어가도 되는거야?'

 

'응..사감한테 전화했어..'

 

'그래..잘됐네'

 

'무슨 회식을 지금까지해..'

 

'그냥 마시다보니깐..근데 지금까지 기다린거야?'

 

'전화기도 꺼져 있고..혹시나 술먹고 사고라도 당했나 걱정되서..'

 

'사고는 무슨 내가 애도 아니고..'

 

그녀는 나에겐 눈길조차 주지 않은채 피곤한 듯 이마에 손을 얹고 텔레비젼을 응시하다

 

천천히 일어나 말합니다

 

'얼른 씻고 자야지 내일 출근할려면...'

 

'응..'

 

샤워를 마치고 방으로 들어가니 그녀가 꿀차를 한잔 내옵니다

 

차를 먹는둥 마는둥 피곤함이 몰려와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니

 

그녀도 잠옷으로 갈아입고 옆에 반듯이 눕습니다

 

'xx씨..'

 

'응?'

 

'내일 할말 있으니 퇴근하면 집에서 기다려요'

 

'무슨 말?'

 

'별건 아니야, 오늘은 늦었으니 내일 얘기해...'

 

'그래.'

 

 

그녀를 가만히 안고 잠을 청하자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와 잠에 빠져듭니다

 

미쳐 끄지 못한 텔레비젼 화면은 이러저리 불꽃 튀듯 흔들리고 고주파음은 

 

제 마음을 더욱 불안하게만 합니다

 

이른 아침.

 

자명종 소리에 화들짝 깨어보니 이쁜이 조장은 이미 출근한 뒤였습니다

 

현장 조장들은 야근자와의 인수인계 때문에 남보다 1시간 먼저 출근하는지라

 

함께 아침을 맞이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나도 조금 일찍 사무실로 들어섭니다

 

정xx는 저보다 먼저 출근하여 책상에 반듯이 앉아 서류를 보며 커피를 마시고 있습니다 

 

인기척을 하자

 

정xx가 꾸벅 인사를 합니다.

 

그리곤 주변을 인식하듯 속삭이듯 말합니다

 

'집엔 잘 들어가셨어요?'

 

'네, 정xx씬?'

 

'잘 들어갔어요 그리고 이거 택시비 고마웠구요'

 

제 책상위에 만원짜리 한장을 재빠르게 올려놓고 다시 서류를 들여다 봅니다

 

커다란 영문사전을 펼쳐두고 덤덤한 표정으로 서류를 넘기는 그녀를 무심코 바라봅니다

 

화장기 하나 없는 맨얼굴에 커트머리의 그녀는 실제 나이보다 훨씬 더 어려 보입니다

 

그녀의 옆모습을 멍하니 보다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화들짝 놀라 다시 업무에 집중 합니다

 

이러구러 퇴근시간이 왔습니다

 

해장술 한잔 하자는 사무실 주당들을 외면하고 집으로 재빠르게 발걸음을 돌립니다

 

전날 과음한 탓인지 집에 도착하자마자 잠이 들었습니다

 

얼마를 잤을까 주방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잠에 깨어났습니다 이쁜이 조장은 이미 도착하여

 

바쁘게 저녁을 준비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무슨 요리를 하는지 좋은 냄새가 납니다

 

이윽고 방안에 큰상이 들어옵니다..

 

한눈에 봐도 매콤해보이는 제육볶음과 상추쌈, 잘 졸여진 갈비찜, 잡채, 그리고 하얀 쌀밥과 미역국을 차려옵니다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오늘 무슨 날이야?'

 

'내 생일.'

 

'....'

 

 

여지껏 그녀 생일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미안, 선물도 준비못하고 잠만 자고 있었네..'

 

'괜찮아, 난 자기하고 저녁같이 먹으면 그걸로 족해..'

 

젓가락으로 갈비찜을 한점 집어 입에 넣어봅니다

 

연한 고기살이 입에서 살살 녹습니다

 

미안한 마음과 안타까운 마음이 한데 뒤섞여 나도 모르게 울컥 합니다.

 

그런 나의 모습을 본 그녀도 애써 태연한척 눈을 흘기며 말합니다

 

'자기야, 많이먹어 주방에 한가득 준비 해놨으니깐..~'

 

그녀는 미역국을 담아 제 밥그릇 옆에 놓습니다 

 

5년간 객지 생활중 처음으로 생일상을 함께 한다는 말에 그녀를 가만히 안아 줍니다  

 

식사가 끝나고 그녀와 차를 마시며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다 그녀를 기숙사에 바래다 주고 

 

집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집에 다다를 즈음 휴대폰벨이 울립니다

 

 

'여보세요?'

 

'선배, 저에요 정xx.'

 

그녀입니다.

 

간단한 인삿말과 함께 잠시 뜸을 들이다 입을 엽니다

 

'선배, 이번 주말 시간 어떠세요?'   

 

'....'

 

약속시간과 장소를 정하고 몇마디 더 나누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녀와 사무실에선 여전히 사무적인 대화뿐 그녀도 가타부타 별말이 없습니다

 

그녀를 만나기 전날, 늦은 퇴근을 하고 집으로 가보니 이쁜이 조장이 저녁을 준비하느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저녁을 먹는동안 나를 빤히 바라보던 그녀가 입을 엽니다

 

'자기, 나 기숙사 나올까봐...'

 

'갑자기 왜?'

 

'왜라니?...나 자기집에 같이 살면 좋을거 같아서..'

 

말꼬리를 흐리며 내 눈치만 살피던 그녀가 다시 입을 엽니다

 

'지금은 자기집에 같이 있다가, 내 적금 만기되면 같이 아파트 전세로 나가자..'

 

뜸금없는 그녀의 말에 잠시 말을 잊었습니다

 

'나 연말에 다른 저축까지 합치면 5천만원 정도 될거야..그리고 자기 전세방 빼면 충분해..'

 

조금 두려운 마음이 들어 그녀를 빤히 바라만 봤습니다

 

그녀는 재촉하듯이 다시 입을 엽니다

 

'자기야, 나 많이 생각해 봤는데 우리 둘이 빨리 합쳐야...'

 

'잠깐만'

 

답답한 마음에 말을 자릅니다

 

'우리 만난지 얼마나 됐다고 그렇게 쉽게 말해..?

 

결혼은 둘이서 대충 하는게 아니라 집안과 집안이 만나 정하는거야 

 

그만큼 서로 잘 알고 집안과도....' 

 

'알았어....미안해'

 

왠지 견딜수 없이 화가나 밖으로 나가 담배를 한대 피워 물었습니다

 

그녀도 천천히 따라나와 먼발치서 물끄러미 바라만 봅니다

 

머리속이 더욱 복잡해집니다

 

'자기야, 알았으니깐 들어가자..' 그녀가 손을 잡아끕니다..

 

달리 할말이 없어 들어가 침대에 눕습니다

 

불을끄고 그녀도 따라 눕습니다

 

'기숙사 안들어가도 되는거야?'   

 

'전화했으니까 걱정마..'

 

가만히 돌아누워 생각에 잠깁니다

 

그녀는 내등에 기대 얼굴을 묻고 있습니다

 

'자기..'

 

'응..'

 

'내가 잘못했어 그니깐 화풀어..'

 

'...'

 

그녀가 소리없을 옷을 벗습니다 

 

나의 목에 키스하며 손을 가만히 뻗쳐 복부 아래를 만집니다

 

'미안 나 피곤해..'

 

그녀는 멈추지않고 애무를 계속하다 나의 귀에 가만히 속삭입니다

 

'피곤하면 그냥 가만있어 내가 입으로..' 

 

그녀를 뿌리치며 나도 모르게 소리를 빽 지릅니다

 

'피.곤.하.다.고! 왜그래 싸구려같이..'

 

'....'

 

그녀는 잠시 멈짓하더니 튕겨지듯 침대에서 일어나 옷을 입고 나가 버립니다

 

현관문이 신경질적으로 덜그덕 거리더니 '꽝' 하는 소리와 함께 닫힙니다

 

그녀를 잡지 않기로 하고 그대로 누웠습니다..

 

라디오를 틀고 거실에서 술을 꺼내 조금씩 마시며 뜬눈으로 밤을 지샙니다.

 

그녀에 대한 마음이 단순한 연민인지 사랑인지 백년이 지나도 알수가 없을거 같습니다

 

 

 

술병이 바닥 날 무렵.

 

쿵쿵거리는 발자국 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거칠게 열리는 소리가 납니다

 

이어 방문이 확 열립니다 

 

이쁜이 조장입니다

 

머리는 헝클어진채 눈은 새빨갛게 충혈되어있습니다

 

비틀거리며 문앞에 기대어 혀꼬인 말로 소리칩니다  

 

 

'맨날 샘플 받으러오는 그년이지?'

 

'내가 모를줄 알아? 너도 니동기랑 똑같은 개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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