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꾼 - 인생의 희노애락을 담다

안녕하세요 40대 후반 아줌마입니다.

우연히 판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가끔 보다가 저에게도 드 디어 이런 걸 쓸 일이 생겨서 잘 못쓰는 글이지만 한번 올려 보려고 합니다. 저와 남편은 대학때 신입생과 복학생으로 만나 (큰딸에겐 미안하지만) 술김에 사고 쳐서 임신하여 바로 결 혼한 케이스입니다.

 

그래도 양가부모님이 결혼 허락해주셔서 휴학하고 아기 낳고 바로 복학하여 학교 마치고 회사생활도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다 둘째가 생긴 뒤로는 회사는 접고 딸하나 아들 하나 낳아서 잘 키우고 있습니다.

 

남편이 30년만에 술을 먹게 된, 반대로 정확히 24년 전에 술을 끊게 된 계기는

바로 둘째 낳는 날 남편이 술에 취해 못왔기 때문입니다.

출산예정일보다 일찍 나온 둘째이긴 하지만, 회사 회식 때문에 당시에 삐삐를 쳐도 확인도 못하고 만취한 채로 집에 가서 잠들었거든요.

 

다행히 친정언니가 연락이 되서 우리 큰 애 데리고 가고 친정부모님 오셔서 무사히 출산을 하였습니다. 그 뒤는 뻔한 결말이죠 양가 불려 다니면서 남편 혼나고, 저한테도 엄청 욕먹었어요. 그러더니 술을 끊었습니다. 지금까지요. 남편이 술을 끊던 날 했던 말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네요.

0000(큰딸이름) 결혼하는 날까지 술 안 마시겠다고..

그랬던 그 날이 바로 다음주 토요 일니다.

저희 아빠랑 시아버지 돌아가셨을 때도, 직장 생활하면서 겪어왔을 수많은 술자리를 거절하고 참아 왔던 사람이 다음 주에 술을 마신다고 합니다.

 

묵묵하게 내뱉었던 그 말이 왜 그리 슬펐는지 모르겠어요. 다음주에 결혼식 끝나고 아버님(시아버지는 아버지라 하고 저희 아빠는 아버님이라고 합니다) 산소 갔다가 술 한잔 하고 싶다고 하길래 저도 모르게 눈물이 펑펑 나더라고요. 이 사람이 그동안 얼마나 가정에 헌신했는지 알거든요.

 

용돈 줘도 그 용돈 모아서 딸내미 아들내미 선물 사주고 제 생일을 한 번도 그냥 지나친 적이 없어요..

제가 참치랑 게장 좋아하는데 생일 때 본인도 못 먹는 좋은 식당에 자주 데려가 줬거든요.

남편이 술 한잔 하고 싶다길래 뭐랑 한잔하고 싶냐고 물어보니 그 대답에 한번 더 울었어요 김치찌개.. 고기 듬뿍 넣은 김치찌개 난 그게 참 좋더라. 이 말 듣고 정말 너무 미안하더라고요.

 

내가 둘째 낳고 했던 모든 말이 이 사람한테는 비수가 되어 었나 보구나..

아들내미 군대 갈 때도 술 한잔 따라주지 그걸 아직도 참고 있냐고 꽁해있지 말라고 했던 그 말도 그 순간에 떠올라 너무 미안하더군요.

 

이번 주 화요일에는 둘째 아들이 제대를 합니다. 첫째도 아빠가 왜 술을 안 마시는지 알기에 일부러 결혼식을 동생 제대한 다음으로 잡은 걸 잘 알고 있어요.

 

코로나 때문에 많은 분들을 초대하지 못하지만 결혼식 끝나고 남편을 위해 술상을 차리려고 합니다.

마음 같아선 세상 좋은 건 다 넣어주고 싶어요. 남편의 24년에 대한 보상이 이 초라한 김치찌개여도 될까 싶은데..

 

또 눈물을 홀짝홀짝 흘리며 글을 올리네요.

 

판에 보면 많이 힘든 이야기들도 많지만, 남편도 연애 때처럼 많이 사랑해주시길

그러면 그 사랑이 다시 돌아온다는 걸 전해드리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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