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꾼 - 인생의 희노애락을 담다

어두컴컴한 방 안...

 

누군가가 스르륵 문을 열고 바람처럼 소리도 없이 문턱을 넘어 섭니다.

 

너무 어두워서 형제조차 분간이 되지 않는 검은 물체가 손을 높이 치켜 드는 순간

 

날카로운 빛이 반짝입니다.

 

시체처럼 침대에 쓰러져 초점없는 눈으로 자신의 가슴 속으로 깊숙이 파고 드는 날카로운

 

그 무언가에 모든 것을 체념한 듯 눈을 감습니다.

 

 

 

 

굳게 감은 속눈썹에 눈물이 방울방울 맺힙니다.

 

 

‘ 고통도 슬픔도 이제 모두 내어버리자. ‘

 

차라리 불의 마왕이 내게 와 준 것에 감사하자….

 

 

 

 

그동안… 긴 세월동안 너무 아팠었어…. 따오기에게 준 상처, 고스란히 내가 돌려 받는거야.

 

 

결국.

 

 

인생이란. 공짜는 없는 법이었던거야.

 

 

내가 누군가를 아프게 했다면, 그로 인해서 내가 잠시라도 즐거웠다면

 

나도 다시 그 대가를 치루게 된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 그래도… 잠깐이라도 행복했었잖아. 내가 썬을 만나지 못했었다면

 

과연 지난 몇 년간 이만큼 행복할 수 있었을까?

 

 

 

평생의 작은 행복과 짧은 썬과의 행복 중 하나를 택하라고 한다면

 

난 다시 태어나도 썬을 선택할거야…. ‘

 

 

 

 

 

밤 새 썬은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밤 새 악몽에 시달린 나는 비틀거리듯 거리로 나섭니다.

 

 

 

 

“ 치토스. 밤에 뭐했길래 졸아? “

 

“ 술펐냐? “

 

 

 

썬에게 다시 전화 거는 것 조차 두렵습니다.

 

‘ 만약 전화했는데 받으면 뭐라고 하지? 화를 낼까?

 

그랬다가 썬이 화내면? 그래서 헤어지자고 한다면? ‘

 

 

 

도저히 전화를 걸 수 없었습니다.

 

‘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내가 더 이렇게 눈치를 봐야하는거지….

 

헤어져도 내가 헤어지자고 해야 할 입장인데

 

내가 왜 헤어지자고 할까봐 전화도 못거는거지…

 

 

 

바보다 정말. ‘

 

 

 

 

‘ 대체 어제 무슨 일이 있었던거지. 그래. 무슨 일이 있었던게 분명해. ‘

 

 

 

전화를 겁니다.

 

 

“ 응 자기야. 출근했어? “

 

 

평소와 다름없는 억양과 다름없는 목소리.

 

분명 썬이 맞는데 왜 이렇게 낯설게 들릴까요.

 

 

“ 저기 있잖아. 화낼까봐 간단하게 물어볼께. 그리고 더 이상 안물을께. “

 

 

눈치를 보며 힘겹게 말을 꺼내면서도 심장이 쿵쾅쿵쾅 방망이질을 칩니다.

 

 

 

갑자기 어두워 지는 썬의 억양 “ 모………… “

 

“ 어제 밤에 몇시까지 회식했어? “

 

 

차마 누구를 만나 무엇을 했냐는 질문을 할 수는 없었습니다.

 

 

 

 

‘ 아니, 왜 그걸 못물어 볼까요. 잘못한 것도 없고 되려 혼나야 할껀 썬 아닌가요? ‘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대답을 듣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사랑이란. 지극히 내가 알고 있는 사랑의 밀당에 있어서만큼은.

 

간절함이라는 무기로 사랑의 전쟁터에 나서서 결코 승리할 수 없고 승리한 역사가 없다는 것.

 

결국 썬의 선택에 의해서 우리의 사랑이 유지되느냐 마느냐가 갈린다는 것.

 

그리고 이게 우리 둘 사이를 관통하는 유일한 확신이라는 것.

 

 

나머지 모든 것은 현재 불확실합니다. 그래서 더더욱 저는 고통스러워 하는 것이었죠.

 

 

 

 

“ 좀 늦게 끝나서 전화 못했어. 그게 그렇게 궁금했어? “

 

“ 응. 난 좀 궁금할 수 밖에 없었어. 일단 걱정도 되고말야.

 

늦었더라도 전화 좀 주지 그랬어. 나 걱정하는 거 뻔히 알면서.. “

 

 

“ 자기야! 걱정하지 말랬지? 그리고 나한테 자꾸 이것저것 묻는거 싫어하는거 알지? “

 

“ 그럼 나 걱정 안해도 되는거지? “

 

 

 

확인 받고 싶었습니다.

 

묻고 싶은게 너무나 많았지만, 밤 새 혼자서 되뇌인 수많은 말들이 있었지만

 

더 이상 구질구질하게 물어볼 수 없었습니다.

 

 

 

썬은 새장 속의 새가 아니었으니까요.

 

 

나는 썬의 사랑을 받으며 살아가는 새장 속 새이기를 원했지만

 

썬은 그렇지 않았으니까요.

 

 

 

당장은 썬이 너무 보고 싶었습니다.

 

 

 

“ 오늘 퇴근하고 맛있는거 먹으러 갈까? “

 

“ 나 오늘 집에 일찍 들어가 봐야해. 어제 늦게 들어왔다고 아빠 화나 계셔. “

 

 

“ 내가 늦게 들여 보낸 것도 아닌데… 서운해. “

 

“ 자꾸 그런다! 다음에 보면 돼지. “

 

 

 

 

 

다음?

 

내일이 아니고 다음이라니.

 

 

“ 어차피 내일 주말이니까 그럼 내일 영화나 보러 갈까? “

 

“ 이번 주말엔 언니랑 엄마 모시고 시골에 가봐야 해. “

 

 

 

 

불의 마왕.

 

착란증에 걸린 환자처럼 이토록 눈부신 밝은 날에

 

불의 마왕이 눈앞에 검은 그림자를 드리우며 나타납니다.

 

 

 

 

‘ 죽여버릴꺼야…… 죽어. 죽어!! “

 

 

 

 

 

 

 

와장창!!

 

 

화장실 유리창을 박살 낸 핸드폰이 퍼런 속 살을 드러내고 바닥에 나뒹굴고 있습니다.

 

 

 

회사 현관을 박차고 달려 나오는 나를 동료들이 따라와 잡습니다.

 

 

“ 뭔일있어? 대체 왜그래? “

 

“ 야 지금 난리났어. 경비실에서 사무실로 전화왔어. 청소하시는 아주머니가 연락했나봐. “

 

 

“ 놔… 나 지금 갈데가 있어. 외근 나갔다고 해. 뒷 일 부탁할께. “

 

 

동료의 손을 뿌리치고 달려 나가다가 고개를 돌려 외칩니다.

 

 

“ 아! 썬 문제야. 이해하지? “

 

“ 야 사고는 치지 말아라. 얘기는 잘 해 놓을께. 잘하고 와.“

 

 

 

 

 

택시를 타고 도착한 썬의 회사 앞.

 

공중전화 부스에서 썬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겁니다.

 

“ 나 지금 사무실 앞이야. 잠깐만 나와. “

 

“ 지금 왜 이러는데?  자기 미쳤어? “

 

“ 잠깐 봐야겠으니까 잠깐만 나와. 나도 많이 참았던 거 알지? “

 

“ 뭘 참아? 자기가 뭘 참았는데? 좀전에도 일방적으로 전화 끊고.

 

아 그러고 보니까 이거 공중전화 같네? 그치? “

 

“ 핸드폰 박살냈어. 이제 전화하기도 어려우니까 잠깐만 나와.

 

어차피 이걸로 실강이 하면 시간만 갈꺼아냐. 그냥 나와서 잠깐만 얘기하고 들어가. “

 

“ 안돼. 지금 바빠서 못나가. 나중에 끝나고 내가 집으로 전화 걸께. 집에 가 있어. “

 

깊은 한 숨이 새어 나옵니다. 썬에게 들키기 싫어서 수화기를 막고 한 숨을 내뱉습니다.

 

 

 

하아………………

 

 

 

“ 제발.. 잠깐만 나와주면 안될까.. 부탁할께. 제발. 안그러면 내가 올라갈 수도 있어. “

 

“ 치.토.스. “

 

“ 왜.. “

 

“ 나 지금 사무실 아니야. 딴데 와 있어. “

 

“ 어디. “

 

“ 여행왔어. “

 

“ 누구랑. “

 

“ 어제 만난 사람이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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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여기까지 올립니다.

 

계속 이어갈께요. 로컬에서!

 

 

 

 

사람이란게 참 간사해요 ㅎㅎㅎ

 

처음에 글 쓸 땐 관심 가져줄까봐 걱정도 했었는데(참 넌센스 나셨다 그죠?ㅎㅎ)

 

나름 몇 시간씩 정성들여 썼는데 댓글이 적으면 또 거기에 상심하고 ㅎㅎㅎ (제가 워낙 소심한바가유)

 

 

 

무튼 길게들 오셨네요!

 

완결 쏟아냅니다^^

 

 

읽어주신 것만으로도 진심진심 감사드려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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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친한 동료이자 사회생활을 하며 가장 친하게 지내는 고름(화장실 뒷수습 해 준 친구)와

 

강남역 1번 출구 앞 노상 포장마차에서 쭈꾸미에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는 치토스.

 

 

“ 뭐… 뭐라 할 말이 없다. “

 

어깨를 두드려 주는 고름.

 

“ 같이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힘이 된다 야. “

 

“ 썬… 참말로……..에혀.. 아니다 술 받아라. “

 

“ 이모~~~ 여기 맥주잔 좀 주세요. “

 

“ 왜? 소주 안받냐? “

 

“ 맥주잔에 마실려고 그런다. “

 

“ 미친놈. 더 마실꺼면 차라리 좋은데 가자. 우리집 논 팔려서 나 돈 많다 ㅋㅋ “

 

“ 이모~ 맥주잔이요!! “

 

“ 나 미친놈 맞지. 니 말이 맞지. 내가 몇 년동안 어떻게 썬을 만나왔는지 안다면 난 미친놈이 맞는거다. “

 

“ 너 행복했었잖아. 둘이 세상에서 제일 잘 어울려 보였는데. “

 

“ 다른건 내가 말 해 줄 수 있는게 없는 것 같다.. 나도 아무것도 모르거든. “

 

“ 그냥 너 옆에만 있어주면 되는거지? “

 

“ 그래. 니가 남자라 다행이지 여자였다면 오늘 살색영화 끝판까지 찍었지 싶다. “

 

“ 좋은데 가자니깐? 나 논팔았다고요 사장니임~ “

 

고름에게 맥주잔을 들이밀면서 “ 아닥하고 술 따라라. 발로 꽉꽉 밟아서. “

 

 

 

저 멀리 선릉공원 위로 붉은 석양이 내립니다.

 

석양.

 

 

< 석양이 지는 날 당신을 기억할께요. >

 

대학시절, 누구보다 나를 사랑했고 원했던 따오기를 추운 겨울의 언덕에 내버리고

 

돌아서서 썬에게 돌아가던 날, 그리고 썬을 간절히 원했던 그 사람을 썬에게서 떠나보내 던 날

 

보았던 붉은 석양.

 

그 사람을 태운 비행기가 석양을 뚫고 하늘 저너머로 사라진 날.

 

 

< 얼마나 아프세요. 창밖으로 보이는 구름이.. 저 붉은 구름이 당신의 마음이겠죠. 석양이 지는 날 당신을 기억할께요. 그리고 행복하겠습니다. 더 이상 불행해 질 자격도 없는 남자입니다.

그리고 고마워요. >

 

나는 다짐했었다.

 

이제 더 이상은 누구에게도 갈 수 없는 남자가 됐노라고.

 

영원히 행복함으로써 따오기와 당신에게 용서를 구하겠다고.

 

 

 

 

맥주잔이 나의 입술 위에서 잔의 노래를 부릅니다. 잔이 춤을 춥니다.

 

새벽동이 틀 때까지, 4차까지 가서야 춤사위가 멈췄습니다.

 

 

고름이 나를 집앞까지 부축해서 걸어갑니다.

 

“ 야 핸..펀 줘봐라 끄윽. “

 

“ 전화하지 마라. “

 

“ 줘봐라. “

 

“ 나 썬 전화번호 없다. “

 

“ 내가 기억하는데… 내 손가락이 기억하고 내 몸이 기억하고 내 세포 하나하나가 썬을 기억하는데 너 따위가! “

 

“ 내일 전화해라. 오늘은 아닌 것 같다. “

 

“ 너 가면 나 공중전화 가서 한다. “

 

“ 옛다 받아라. 대신 짧게 해라. 저쪽에서 기다리고 있으마. 화내면 절대 안된다. 화내면 너만 손해 본다. 명심해! “

 

“ 꺼져. “

 

 

 

 

파리 쫓듯이 고름을 저 멀리 보내고 전화를 겁니다.

 

자다 깬 목소리로 “ 여보세요… “

 

“ 나야… 끄윽 “

 

“ 하아…………. 술마셨어? “

 

갑자기 울음이 왈칵 쏟아 집니다.

 

부들부들…….. 소리를 안내려고 손으로 입을 막습니다.

 

손가락을 타고 눈물이 흘러 내립니다.

 

 

“ 썬……. 나한테 이러지마… 나한테 이러면 안돼… “

 

 

 

 

< 나한테 이러지마. 나한테 이러면 안돼. >

 

 

버림 받던 따오기가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애절하게 애원했던 한 마디.

 

 

오늘 그 대사의 주인공은 내가 되었습니다.

 

다른 남자의 품에 누워 나의 전화를 받는 내 사랑에게 애원을 합니다.

 

 

“ 우리 이러면 안되는거 알잖아. 우리 이러면 안돼. 너 나한테 이러면 안돼… “

 

“ 자기야……. 나 자기 사랑해… 정말이야…. 나 어쩔 수 없었어… 어떻게 말해야 우리 불쌍한 자기가 내 마음을 믿어줄 수 있을까……… “

 

 

썬도 웁니다.

 

“ 자기야… 잠깐만 내가 나가서 전화할께. 꼭 받아. “

 

“ 정말로 전화 하는거지? 이거 고름 전화기야. 나 진짜 아까 핸드폰 박살냈어. 고름 저쪽에서 기다려. 빨리 전화해야 돼. “

 

“ 알았어. 꼭 할께. “

 

 

 

 

 

띠리리링.

 

 

“ 자기야. 자세하게는 말 못해. 나 선봤었어. 그날 처음 만난게 아니었어.

 

엄마랑 아빠는 내가 이사람과 결혼하길 원하셔. 그것도 너무 강력하게.

 

자기 존재조차 우리 엄마아빠는 모르잖아.

 

내가 몇 년동안 남자도 안만나고 선도 안보고 하니까 이번에는 강제로 부모님들끼리 미리 약속 다 정하고 날짜까지 잡아놓고 만나게 했어.

 

지금 우리 엄마아빠랑 저쪽 집안 어르신까지 같이 여행 와 있어.. “

 

 

 

“ 하아………………… 나 이제 돈 잘 벌잖아. 이제 나 조금만 더 노력하면 너랑 결혼할 수 있어…조금만 기다려 주면 안될까… “

 

 

“ 늦었어…….미안…………..”

 

“ 그럼!!! 그러면 왜!!!! 그날 나 닮은 애기 낳고 싶다고 했어 이 거짓말쟁이야!!!!!!!!!!!!!! 왜!! “

 

썬은 집에서 혼사 얘기가 진행될 때 혹여라도 내가 알면 충격 받고 고민할까봐 말을 하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어떻게든 자기 혼자 힘으로 엄마 아빠와 맞서서 의지를 꺽으려고 노력을 했었죠.

 

하지만 친언니까지도 그 부모님의 편이 되어 버리는 바람에 썬 혼자서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이미 회사는 지난 주에 그만 둔 상태였고, 여행가기 직전 아무것도 모른 채 자기만 바라보며 행복하게 웃고 있는 치토스에게

 

 

 

“ 자기야. 나 자기 애 낳고 싶어. “

 

 

썬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자신의 진심을 말했던 것이었습니다.

 

무모한 짓 결코 용납하지 않는 썬이.

 

그런 썬이 무모하더라도 날 닮은 아이를 낳고 멀리 도망이라도 치고 싶은 심정으로 말했던 것이었죠.

 

 

 

 

그렇게.

 

그렇게.

 

우리 둘을 연결하던 링크(사슬)은 끊어져 버렸습니다.

 

썬과 치토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거대한 불의 마왕이 우리 둘 사이에서 춤사위를 벌이며

 

날카로운 칼로 사슬을 끊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치토스는 끝도 안보이는 고통의 지옥으로 떨어집니다.

 

 

몇 개월 후.

 

고름이 어깨를 툭 치며 “ 야 담배 빨러 나가자. “

 

“ 나 좀전에 빨고 왔는데? “

 

“ 에이.. 그럼 다녀올께. 커피 뽑아올까? “

 

“ 난 그럼 커피만 먹어줄께 ㅋㅋ 500원짜리 고급커피로! “

 

 

 

 

 

썬.

 

 

 

“ 안녕하세요 고름씨. “

 

고름이 썬과 나를 동시에 번갈아 보며 어리둥절 합니다.

 

나는 고름을 쳐다보며 눈빛으로 말합니다. “ 너가 이랬냐.. “

 

 

고름은 두 손바닥을 펼쳐 보이며 “ 아냐아냐~ 썬씨 치토스랑 얘기 나누세요. 야 나 들어간다. “

 

 

 

 

 

선릉공원 작은 공원매점 앞 의자에 앉아 있는 썬과 치토스.

 

 

늦은 점심식사를 마친 직장인들이 무단외출의 단맛에 빠져 한적하게 산책을 즐기고 있습니다.

 

이따금씩 젋은 대학생으로 보이는 커플들이 나란히 손을 잡고 지나갑니다.

 

 

“ 잘지냈어? “

 

“ 나야 뭐… 항상 똑같지.. 회사 일.. 일 회사… “

 

“ 그런거 말고.. 몸 괜찮은거야? “

 

“ 아픈데 한 개도 없어! 봐바 팔팔하잖아. 뭐… 잠시 술에 쩔어 지냈지만. 이제 괜찮아. “

 

“ 정말이지? “

 

“ 응. “

 

“ 나 밉지? “

 

갑자기 깊은 사색에 빠져든 듯 치토스의 눈빛이 지긋이 감깁니다.

 

한참을 눈감고 말이 없던 치토스가 눈을 뜨며 말합니다.

 

 

“ 처음에 말야.. 처음. 그러니까 그 일이 있었던 날.. 거의 두달 동안은 잠을 제대로 못잤었어.

 

알코올홀릭이 되어버리더라. 미친듯이 마신 것 같애. 나중엔 주변에서 술을 못마시게 하니까

 

물병에 술을 잔뜩 담아서 들고 다닐 정도였으니까.

 

근데 정말 신기한게.. 너 없이는 죽을 것만 같았던 그 고통이 3개월 째 접어 들면서

 

조금이 아물어 가더라. 그리고 지금은 정말 많이 좋아졌어.

 

사람들이 하는 얘기들.. ‘ 시간이 약이다 ‘ 라는 말 있잖아.

 

그 말 사실이더라고.

 

처음엔 그런 말 하는 새끼들이 다 자기 얘기 아니라고 쉽게 하는 말이라고 생각 했는데

 

그 말이 사실이었어. “

 

 

“ 나 곧 떠나. “

 

“ 어디로? “

 

“ 프랑스. “

 

“ 가는구나. 그래 차라리 가는게 낫지. 그래야 너가 편하지. “

 

“ 가기 전에 자기 보고 싶었어. “

 

 

 

자기.

 

자기.

 

 

참 오랜만에 듣는 썬의 목소리. 그리고 달콤한 단어. 자기.

 

 

갑자기 잊고 지냈던 지난 날의 썬과의 추억이 파노라마가 되어 선릉 공원을 덮습니다.

 

공원의 모든 풍경이 썬과 찍었던 드라마틱한 추억의 장면장면들로 수 놓입니다.

 

 

 

아름다웠어.

 

그리고 치열했어.

 

‘ 그토록 아름답고 치열했던 영화는 없었던 것 같애. ‘

 

 

 

 

밝은 미소를 지으며 썬을 부릅니다.

 

“ 썬. 나 이제 너 없이도 잘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애.

 

덕분에 난 평생 너무나 아름다운 기억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게 됐잖아.

 

너가 예전에 내 꿈에 나타나서 했던 말 난 아직도 기억해. “

 

“ 무슨 꿈? “

 

너무 불길한 꿈이라 차마 얘기하지 못했었던 그 꿈.

 

 

 

 

< 꿈 – 회상 >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정을 바라보고 상념에 빠져든 나..

 

창밖으로 차가 주차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또각또각또각.

 

 

 

 

찰칵.

 

 

 

방문이 열리고 그녀가 들어옵니다.

 

한 손에 소주를 든 채.

 

 

 

 

미동도 하지 않고 누운 채 그녀를 바라보는 나.

 

‘ 나가! ‘

 

자존심 때문에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할뻔 했습니다.

 

 

맥주잔에 소주를 가득 따라 입에 물고는 나에게 다가오는 썬.

 

무릎을 꿇고 허리를 숙여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쓸어올리며 술을 머금은 입술을 그대로 나의 입술에 포개입니다.

 

쓰디쓴 소주의 향이 코를 자극하고, 입 속으로 그녀가 나눠주는 쓰디쓰면서도 달콤하고 소중한 액체가 들어옵니다.

 

둘이 거의 동시에 술을 삼키고, 한참을 서로의 눈빛만 바라보며…. 그녀는 무릎 꿇은 채로, 난 누운 채로 눈물을 쏟아 냅니다.

 

그녀의 볼을 타고 흐른 눈물이 방울이 되어 내 콧잔등으로 떨어집니다.

 

다시 입술 위로 떨어집니다.

 

그녀의 눈물과 나의 눈물이 서로 섞여 더욱 더 깊은 슬픔의 호수를 채워갑니다.

 

 

그녀의 팔을 당겨 침대 위로 올립니다.

 

‘ 이게 마지막이겠지…….. ’

 

 

이젠 우린 오늘 밤을 끝으로 다시는 볼 수 없는거겠지.

 

 

 

“ 울지마 바보야….. 내가 오늘 너 눈물 다 먹어줄껀데 너무 많이 울면 나 똥배 나오잖아…. “

 

 

썬이 나의 볼을 손으로 닦아주며 다시 입술을 덮습니다. 나의 모든 눈물을 마시겠다며, 나의 모든 체취를 가져 가겠다며 그렇게 그녀와 나는 지독한 슬픔을 격정의 몸짓으로 씻어갑니다.

 

 

그녀와 내가 흘리는 눈물은 배게를 적시고 우리의 몸짓은 서로의 가슴을 적십니다..

 

 

 

격렬한 몸짓이 끝나고 난 후.

 

 

그녀가 들어올 때 입었던 모습 그대로 다시.. 그 모습 그대로 다시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 몸이 하나듯 마음도 하나일꺼야. 단지 더 필요한 사람에게 몸만 가는거야… 죽을 때까지 사랑할 사람은 자기 하나 뿐이야……. 사랑… 사랑… 사랑…. 사랑… 사랑해….. “

 

 

 

현관문이 닫기고 그녀가 떠나가고…. 켜져 있는 센서등이 언제쯤 꺼질까 불안한 듯 시력을 맞춥니다.

 

‘ 그녀의 흔적은 저 센서등이 꺼지기 전까진 아직 살아 있는거야… 저 센서등도 그녀 때문에 켜진거니까……….. 만약 저 등이 안꺼진다면…… 그럴일은 없겠지만 정말로 안꺼진다면…… 그렇다면 그녀가 다시 내게 돌아올지도 몰라…………. 그러니까 제발 꺼지지마…………. ‘

 

 

 

 

 

 

< 꿈 – 회상 끝 >

 

“ 몸이 하나듯 마음도 하나일꺼야. 단지 더 필요한 사람에게 몸만 가는거야… 죽을 때까지 사랑할 사람은 자기 하나 뿐이야……. 사랑… 사랑… 사랑…. 사랑… 사랑해….. “

 

 

몸이 하나듯…

 

“ 썬. 너가 그렇게 말해 주었었어. 꿈속의 너조차도 이렇게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듯이

 

현실에서 너와 나누었던 모든 기억 내 세포 하나하나가 기억하고 있어.

 

앞으로도 잊혀지지 않는 행복한 기억을 갖고 살아갈거야.

 

그것만으로도 난 행복해.

 

누가 나만큼 아름다운 사랑을 해봤겠어. 난 너에게 고마워 하고 있어. 그러니까 절대 나한테 미안해 하지마. “

 

 

결국 썬이 참았던 울음을 터트립니다.

 

 

“ 으앙………………..”

 

두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린 채 고개를 숙이고 흐느낍니다.

 

들썩이는 어깨를 감싸 안아주는 치토스.

 

 

“ 실컷 울어. 내 품에서 마지막으로 원없이 울고 가. “

 

썬이 품으로 안기며 두 팔로 목을 감싸안습니다.

 

그리고 외칩니다.

 

 

 

“ 사랑해 자기야.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

 

 

 

하루 열 번의 사랑고백.

 

 

우리들의 서약서.

 

 

그녀가 주변을 아랑곳 없이 젖은 목소리로 “ 사랑해 “를  열 번을 그렇게 목놓아 외칩니다.

 

 

 

행복합니다.

 

 

 

서로의 볼을 비비며, 서로의 눈물을 손바닥으로 닦아주며, 눈동자를 맞추며

 

서로의 입술을 포갭니다.

 

 

서로의 혀를 심장 속까지 빨아 들일 듯이 강렬하게 흡입합니다.

 

서로의 호흡조차 대신 해 줄 만큼 강렬하게.

 

 

몇 분간 그 상태로 서로를 느낍니다.

 

 

 

 

키스가 끝나고.

 

 

 

또 시간이 흐르고.

 

 

 

그녀가 말했던 출국날.

 

퇴근하고 집 베란다에 앉아 책을 읽습니다.

 

시계를 봅니다.

 

그녀가 떠날 시간.

 

 

 

저 멀리 붉은 석양이 내립니다.

 

 

또 한 사람이 나의 곁을 떠나 갔습니다.

 

붉은 석양 사이로 별빛 같은 비행기의 불빛이 반짝입니다.

 

 

속눈썹이 따뜻하게 젖어 옵니다.

 

 

 

 

 

 

 

“ 사랑해… 석양이 지는 날 널 기억할께. 사랑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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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관심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처음 하는 연재였는데.;; 원래 연재를 생각하고 쓴건 아닌데 어찌하다 보니까 이렇게 연재 아닌 연재를 하게 되었네요.

 

 

소설도 현실도 아닌 경계없는 그냥 < 글 > 로써만 봐주세요^^

 

 

 

 

썬은 몇 년이 흐른 뒤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치토스는 결혼을 했습니다.

 

 

 

 

그녀는 지금 그 누구의 곁에 있을까.

 

 

 

 

나를 닮은 습관이 남아 있을까.

 

 

 

 

한 밤 중에 울리는 전화는

 

 

 

혹시 네가 아닐까.

 

 

 

 

 

 

여운이 남지만 여기까지만 쏟겠습니다.

 

 

나머지 스토리는 님들의 상상의 힘으로 아름답게

 

 

만들어 주세요^^

 

 

 

읽어주신 분, 칭찬 해 주신 분, 울어 주신 분, 문자 주신 분... 모두 감사해요.

 

 

 

 

완결에 따오기를 정리하지 않았었는데 쪽지로 날카롭게 지적 해 주신 분들이 계셨네요 ㄷㄷㄷㄷㄷㄷ

 

 

저도 다 쓰고 나서 ' 빼먹었네;; ' 하고는 있었지만

 

이미 많은 분들이 보고 계시는 글을 수정하기도 그렇고 해서 그냥 두었습니다.

 

 

그럼 짧게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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썬과의 사랑. 그것은 마치 폭풍처럼 우리들에게 다가왔고

 

붉은 석양이 되어 사라져 갔습니다.

 

 

 

 

그녀를 처음 알게 된 그 날

 

‘ 내가 널 정복 할께. 이 발칙하고 도도한 여자야. ‘

 

경제적 지위 차이에서 오는 상대적 박탈감에 이끌려 무의미한 도전을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단지 내가 가진게 없는 사람이니까.

 

상대를 이긴다는 것은 그에게 받은 모멸감의 이유를 놓고서 당당히 싸웠어야 했는데

 

비열한 자들은 자기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수단을 찾게 되는 법이죠.

 

 

열심히 노력해서 썬과 동등한 지위까지 차고 올라가는 것만으로도

 

이미 난 이길 수 있었습니다.

 

역설적이지만, 썬을 알게 된 그 시절 제가 비열한 인간이 아니었다면

 

아마 우리 둘에게 아름다운 폭풍은 시작조차 없었을 것입니다.

 

 

비겁한 겁쟁이를 진정한 남자로 탈바꿈 시켜 준 썬에게 고맙습니다.

 

 

 

 

 

 

 

썬이 프랑스로 떠나고 얼마 후

 

회사에서 규모가 제법 큰 회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실적이 좋아서 대표이사가 직접 주관하는 회식이라 누구도 빠져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신입사원 환영회까지 겹쳐서.

 

사외이사님들까지 모두 참석 한 회식자리.

 

 

 

양재동 삼호물산 뒷골목 참치회 전문식당.

 

 

33개의 잔이 피라미드를 이루고 있습니다.

 

맨 꼭대기의 마지막 잔은 젓가락으로 받쳐 놓았습니다.

 

 

바둑이(대표이사 – 오른쪽 눈 가에 당구공만한 점이 있어서 치토스가 지어준 별명)께서

 

170만년산 발렌타인으로 마지막 잔을 채웁니다.

 

잔의 경계를 넘어 술이 줄줄 흐르고 흘러 아래를 받치고 있는 잔에 스며 듭니다.

 

“ 채워라! 채워라! 채워라! “

 

구호가 터져 나옵니다.

 

“ 한 병 더! 한 병 더 한 병 더! “

 

 

이미 맥주로 반쯤 채워져 있던 아래층의 잔들이 비로소 넘쳐 흘러 내립니다.

 

 

“ 자자자자 빨리 잔 돌려. 사장님 건배사 해주시죠^^ “

 

좀무(부장님 – 무좀 때문에 발가락 양말을 신고 사무실을 쳐 돌아다녀서 치토스가 지어드린 별명)가 바둑이님께 꼭대기 잔을 건네 드리며 조아립니다.

 

 

“ ****************************************************** “

 

 

 

‘ 아고… 길다…. 그냥 짧게 하지. ‘

 

 

고름 “ 야. 총무팀에 새로 들어온 ㅊㅈ 봤냐? “

 

“ 내 스타일 없던데? “

 

“ 몸매는 쩔던데? “

 

“ 난 키 작고 슴가 작은 ㅊㅈ 좋아하잖아 빙아. “

 

 

 

썬이 그랬거든요.

 

“ 키 153cm 이상 되는 ㅊㅈ 는 여자로 안보인다. “

 

 

 

무언가에 빠지면 그게 절대기준점이 되어 버리나 봅니다.

 

단순이 < 이쁜 여자 > 혹은 < 슴가 큰 여자 > 를 찾는게 남자의 본성이라면

 

치토스는 이제 성향 자체가 바뀐거네요.( 진정한 자게이가 되긴 글러먹;; )

 

 

 

 

총무팀에 새로 입사 한 ㅊㅈ 는 지방대학을 나와 충무로 편집실에서 2년 여를 근무하다가

 

우리 회사에 이직했다고 하더군요.

 

 

부서가 달라서 한 번도 마주칠 기회가 없었었는데 신입들이 하나씩 일어나 자기 소개를 하는데

 

어디선가 한 번쯤 본 듯한 얼굴이랄까.

 

 

‘ 어디서 봤지. 살색영화 주인공 닮아서 그런가? 희한하게 익숙해지네 ;; ‘

 

 

 

 

 

신입ㅊㅈ 는 따오기의 대학동기였습니다.

 

따오기와는 장거리 연애를 했기 때문에 그녀의 친구들과는 거의 어울릴 기회가 없었습니다.

 

가끔 학교 앞에서 기다리다가 함께 나오는 친구들과 가벼운 눈인사를 나눈 정도.

 

그리고 딱 한번 따오기와 나의 1년 기념일 날 호프집에서 어울렸던 몇 몇 친구들 외엔.

 

 

 

 

신입ㅊㅈ 와 처음 얘기를 나누게 된 건 회식이 있고 얼마가 지나서였습니다.

 

점심시간에 딱히 입맛도 없고 해서 고름과 함께 인근빌딩 지하슈퍼에 들러 김밥에 컵라면을

 

먹고 있는데 신입ㅊㅈ 가 동기 한 명과 함께 들어왔습니다.

 

신입ㅊㅈ 가 절 보며 인사를 하네요. “ 안녕하세요. “

 

“ 라면 드실려고요? “

 

“ 네. “

 

슈퍼는 굉장히 좁았습니다.

 

그래도 직장인들이 컵라면 땡기는 날 즐겨 찾는 곳이라 점심시간이면 늘 북적댔죠.

 

 

고름이 의자를 내어주며 “ 여기 앉으세요. “

 

치토스가 장난스럽게 고름을 한 대 치며 “ 아 이 자식 연기하네 또. 너 일어나면 나도 일어나야 하잖아 색기야.

 

저기 이 자식 조심하세요. 이거 순 변태 개ㅎㄹ 자식이거든요 ㅋㅋ “

 

 

혼잣말이 아니라 실제로 저렇게 떠벌렸습니다. ㅎ

 

 

분위기가 분위기 인지라 다들 웃고 떠들며 컵라면을 먹었고

 

벽다방에서 커피를 뽑아 회사 앞 벤치에 앉아 자연스레 학교 얘기며 전 직장 얘기가 오고 갔습니다.

 

 

00대학 00과 00학번.

 

 

‘ 혹시? ‘

 

물어볼까 말까 갈등을 하다가 “ 혹시 따오기 아세요? “

 

신입ㅊㅈ는 회식자리에서부터 저를 알아 봤다고 했습니다.

 

 

 

또 다른 신입ㅊㅈ 와 고름을 먼저 들여 보내고 ㅊㅈ 와 얘기를 더 나누었습니다.

 

 

 

따오기는 졸업과 동시에 동사무소 직원과 선을 보고 결혼을 했다고 합니다.

 

벌써 애가 둘이라고.

 

 

 

놀라웠던 것은, 신입ㅊㅈ 도 제가 죽었다는걸 알고 있었다는 것이죠.

 

 

 

이별의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은 어떻게 이별해야 할지 모릅니다.

 

썬을 통해서 배웠죠.

 

제가 따오기에게 했던 준비없는 이별식처럼.

 

 

따오기는 어느날 갑자기 아무런 준비도 없는 상태에서 나를 잃고 부모님께 제가 죽었다고

 

거짓말을 했었습니다.

 

그 거짓말은 주변의 친구들에게까지 고스란히 이어졌죠.

 

신입ㅊㅈ는 제가 다른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답니다.

 

그러다가 오늘.

 

제가 먼저 따오기를 물어보자 그제서야 확신을 했던 것이죠.

 

 

“ 만약 따오기랑 연락되거든. 사실대로 말씀하셔도 되요. 굳이 숨길 필요도 없고.. “

 

따오기의 연락처를 묻고 싶었지만 차마 그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명함을 건네 주며 “ 그 친구랑 통화하시면요 언제 시간 날 때 치토스가 통화 한 번 하고 싶어하더라고 전해주세요.“

 

 

 

 

 

꼬박 2년이 흘러서야 따오기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 나 너 전화번호 안까먹고 기억하고 있었어. 번호 바꼈을까봐 안했었을 뿐이야. “

 

 

따오기를 만날 때부터 써오던 전화번호.

 

우리 둘이 만난 날을 따서 함께 만들었었으니까요.

 

 

 

별다른 얘기가 오고 가진 않았습니다.

 

 

“ 한 번 볼까.. ? 볼 수 있겠어? “

 

남편도 애도 있는 사람에게 강요를 할 수는 없기에 조심스럽게 마음을 떠 봅니다.

 

“ 그…럴까? “

 

“ 언제가 편해? 내가 내려가야겠지? “

 

“ 아니 나 이번주에 서울 가는데 그 때 보던가. “

 

 

 

 

 

 

 

 

지하철 4호선 사당역 구내 신라명과 앞 저녁 7시.

 

 

따오기가 서 있습니다.

 

스물 한 살의 따오기가 아닌 성숙한 여인의 모습으로.

 

 

 

‘ 미안해. 아주 오래 된 기억이지만 그래도 미안해. 이 말을 그렇게 하고 싶었어.

 

좋은 사람과 좋은 아이들과 좋은 인생을 살아가길 바랄께.

 

난 너에게 준 상처를 용서 받고 싶었어.

 

이렇게 말로 하는 사과보다 썬과의 사랑을 이룸으로써 용서 받고 싶었어.

 

근데 그것도 실패해버리고 말았지 뭐야.

 

그래서 난 도저히 네 앞에 나아갈 수가 없을 것 같애.

 

 

그저 멀리서 바라만 본 것 만으로도 감사할께.

 

나와줘서 너무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

 

 

 

 

지하철이 도착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개찰구로 밀려 나옵니다.

 

인파 속에 묻혀 그녀 앞을 지나칩니다.

 

 

그녀의 눈동자가 인파 속에서 나를 찾고 있습니다.

 

 

그렇게 인파는 썰물이 되어 사라져 갑니다.

 

저도 그녀 앞에서 완전히 소멸되어 사라져 갑니다.

 

 

 

 

 

 

 

 

 

 

 

 

 

 

개찰구를 나와 핸드폰 매장으로 향했습니다.

 

“ 번호이동 좀 하려고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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