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꾼 - 인생의 희노애락을 담다

 

펄벅 여사(Pearl S. Buck)

1892년 6월 26일 ∼ 1973년 3월 6일 (80세)

미국의 소설가.

한국명 박진주 ( Perl은 진주, Buck은 박 씨로 바꿈 )

실제로 그녀가 한국에 방문했을때 스스로 박진주라는 이름을 지어서 사용함.

1938년에는 미국의 여성 작가로서는 처음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

제2차 세계 대전 후에도 평화를 위한 집필을 계속하였다.

펄 벅 재단을 설립하여 전쟁 중 미군으로 인해 아시아 여러 국가에서 태어난 사생아 입양 알선사업을 벌이기도 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과의 일화

1962년 존 F. 케네디 당시 대통령이 펄 벅한테

"내 생각에는 동맹관계라고 미군이 너무 퍼주는데, 그만 한국에서 철수해야 할 것 같소.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가요. 우리는 빠져나오고 대신에 옛날처럼 일본이 한국을 맡도록 해야 할 것 같소."

라고 말하자,

그녀는 "그들은 서로 같은 인종 같아 보일지 몰라도 서로 불공정했던 지배와 피지배 관계에서 제대로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지금 힘있던 쪽에게 다시 통제권을 주겠다는 소리는 마치 우리 미국이 예전 영국에게 지배받던 시절로 돌아가라는 소리와 같습니다."

라고 맞받아쳤다. 이에 케네디도 농담이었다며 물러섰다.

1938년 미국 최초의 여성 노벨문학상 수상

한국에서도 활발히 복지사업을 벌임. 부천에 있던 유한양행 소사 공장이 이사를 가자 유일한의 도움으로 그 부지를 매입, 1964년 한국 펄벅 재단 소사희망원을 설립.

소사희망원 아이들과 함께 한 펄벅 여사

1960년대 말, 펄벅이 소사희망원 아이들과 함께 경기도 부천시 펄벅재단 사무실로 걸어가고 있는 뒷모습.

그리고 1975년 문을 닫을때까지 9년간 8번이나 소사희망원을 방문해 아이들을 직접 씻기고 돌봤음.

소사희망원이 문을 닫은 후에는 부지가 일반에 매각되고 주거지가 되었지만,

2006년 부천문화재단이 부지 일부를 매입하여 소사희망원 건물 한 동을 복원,

펄벅기념관을 세움

펄벅 여사 기념관 전경

펄벅 여사의 눈으로 본 한국

한국은 고상한 국민들이 살고 있는 보석 같은 나라다.

펄 벅의 소설 The Living Reed 서문 중

펄벅 여사 대표작

《동풍 서풍》
《아들들》 (1933년)
《분열된 집》 (1933년)
《갈대는 바람에 시달려도》(1963년)
《새해》(1968년)
《어머니》 (1934년)
《싸우는 천사들》 (1936년) - 아버지의 전기
《어머니의 초상》 (1936년)
《애국자》 (1939년)
《서태후》 (1956년),
《나의 가지가지 세계》(1954년) - 자서전
《대지》(193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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