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꾼 - 인생의 희노애락을 담다

석양이 지는 붉은 하늘 위로 비행기가 힘차게 날아 오릅니다.

 

 

 

“ 아마 우리가 열 살쯤 더 나이가 들어서 만났었다면 좋은 친구가 되었을 것 같네요.

 

좋은 사람 맞죠? 치토스씨, “

 

“ 당신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였다면 맞을거예요. 먼 훗날 더 좋은 모습으로 썬의 곁에서 당신을 맞을께요. “

 

붉게 물든 구름을 뚫고 비행기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마음으로 손을 흔들며 그의 가슴을 어루만져 주었습니다.

 

‘ 얼마나 아프세요. 창밖으로 보이는 구름이.. 저 붉은 구름이 당신의 마음이겠죠. 석양이 지는 날 당신을 기억할께요. 그리고 행복하겠습니다. 더 이상 불행해 질 자격도 없는 남자입니다.

그리고 고마워요. “

 

 

 

 

 

날 간절히 원하는 여자에게 상저를 주고, 내가 절실하게 원하는 여자에게서 남자를 떠나 보내고..

 

썬과 나는 그렇게 사랑이라는 캔바스 위에 그림을 새로 그리기 시작합니다.

 

 

 

나보다 먼저 졸업을 한 썬은 이내 취업을 하게 됩니다. 굳이 돈을 벌어야 할 이유는 없었지만 한가한 삶보다는 늘 바쁘고 진취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좋아했던 그녀의 성격을 발휘하기에는 세상이 좁았습니다.

 

 

학교를 다닐 때는 과제가 있던 없던 하루도 빠짐없이 만나서 데이트를 즐겼었는데 썬이 취업을 하고 난 이후로는 고작 주말에만 만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 하루에 열 번 사랑한다고 말하려면 자기가 쫌 힘들긴 하겠지만 운명이려니 하고 받아들여 ㅋ “

 

이미 1년 이상을 해온 일이라 이제는 힘들지도 않습니다.

 

아마 썬은 그 행위를 일종의 의식으로 받아 들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의 사랑. 그 탄생의 근본에서부터 상처와 배신이 있었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 사랑 = 믿음 ‘ 이라는 공식을 행동으로써 매번 반복하고 학습하기를 원했던… 그래서 일종의 의식이라고 볼 수 밖에 없는.

 

단지 썬과 나의 차이라면 난 그걸 인식하고 행동했다는 것이죠.

 

 

 

 

만나서 데이트를 하거나 여행을 가거나 할 때 썬은 돈을 거의 쓰지 않았습니다.

가진자는 썬인데 오히려 제가 그녀의 삶의 레벨에 맞춰서 데이트를 하느라 똥줄이 빠질 정도였죠.

 

 

학점관리하랴, 알바를 뛰랴, 육체적으로 힘들었지만 그나마 다행인건 그녀가 직장을 다니면서 데이트 횟수가 줄었다는 것. 따라서 저의 지출도 그만큼 비례해서 줄었다는 것이었죠.

 

 

“ 나 오늘 연락 안될꺼야. “

 

“ 난 안되도 되지만 넌 안되면 죽는거 알지? “

 

“ 아는데.. 오늘 내가 동아리 애들이랑 행사 준비 때문에 바쁘거든. 밤을 새야해서 나만 따로 전화통화하고 그러기가 힘들어. 눈치보이잖아. “

 

“ 됐거든요? 안받으면 백번 죽이고 백한번 살린 다음에 또 죽일꺼야. 넌 죽는걸로 끝나는거야 ㅋㅋㅋ “

 

 

 

난 그녀의 집 앞으로 가는 중이었어요 ㅎㅎ

 

돈돈… 그녀는 나에게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이 되라고 했습니다.

결국 가진자가 승리하는 법이고 넌 아직 승리할 체력이 안되니까 무조건 성공하기 위해서 살라고.

 

그녀가 원하는 것을 다 해줄 수 없는 나만의 자격지심이 늘 새로운 이벤트(쉽게 말해 몸으로 떼울 수 있는거)를 만들어서 썬을 감동 시켰었습니다.

 

오늘은 인터넷에서 본 꽃이벤트를 하는 날이었죠.

 

 

 

그녀의 집 근처 게임방에 가서 핸드폰을 끄고 신나게 스타를 즐깁니다.

 

‘ 아마 지금쯤 전화를 했겠지? 몇번이나 했을까? ‘

 

궁금해서 미치고 팔짝 뛸 것 같은데도 꾸욱 참고 게임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3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고대하던 핸드폰 전원 온!

 

부재중 전화 뿐 아니라 음성메세지까지 풀로 꽉 찼네요 ㄷㄷ

 

한줄 요약

 

< 넌 뒤졌어. 당장 전화받거나 해! >

 

 

전화를 걸었습니다.

 

 

“ 야!!!!!!!!!!!!!!!!!!!!!!!!!!!!!!!!!!!!!!!!!!!!!!!!!!!! 잉잉………..”

 

진짜로 우는건 아니고 징징대는 썬에게 “ 왜울어? ㅋㅋ“

 

“ 열받아서 ㅠㅠ “

 

“ 화나고 막 짜증나고 내가 앞에 있으면 패버리고 싶지? “

 

“ 응~ “

 

“ 내가 실은 너네 집까지 갔었거든. 근데 부모님이 무서워서 벨은 못누르고.. “

 

“ 뭐?? 울집까지 왔었다고?? 너 안돼 그러다가 아빠한테 걸리면 너 죽어 진짜야. 내가 무모한짓 하지 말랬지! “

 

“ 그래서 안눌렀다고요.~ 그냥 너 줄려고 선물 사왔는데 문앞에 두고 왔거든. 벌써 한시간도 넘어서 누가 갖고 갔으면 어쩌지? “

 

“ 선물?? 뭔데? 뭔데뭔데?? “

 

“ 궁금하면 직접 나가서 확인해 봐. “

 

 

저는 그녀의 현관이 보이는 골목 어귀 전봇대에 숨어서 숨을 죽이고 있었습니다.

 

“ 자기야 전화 끊지 말아봐 나 지금 나가서 본다~ “

 

“ 응 “

 

잠시 후 썬이 나오고. 조금 전에 제가 놓아 두고 온 장미꽃 100송이를 보더니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더군요.

 

 

“ 자기! 지금 어디야? “

 

“ 학교라니까 “

 

“ 근데 왜 여기까지 왔다가 그냥 갔어?  에이 뻥치시네? 여기 있지? “

 

“ 아니래도요 님하~ 나 시간없어서 아까 꽃만 두고 바로 학교 왔어. “

 

“ 셋 동작에 나오면 뽀뽀는 해주고……. 아 정말 학교 간거야? “

 

“ 응 “

 

잠깐 한 숨을 내쉬던 썬이 딱 잘라 내던진 한마디.

 

 

“ 그럼 다시와. “

 

 

 

“ 거기 편지도 있는데 한번 봐바. “

 

< 꽃 가슴에 안고 세상에서 제일 이쁜 발걸음으로 전봇대로 걸어오니라. >

 

주위를 둘러보던 썬이 전봇대를 향해 걸어오더군요.

 

 

 

몇 명의 여자를 만나 몇 번의 사랑을 했고, 또 몇 번의 이별을 경험했고, 싸우기도 하고  싫증도 느껴 봤지만 신기하리만치 썬과 만나는 3년여 동안 단 한번도 싫증을 느껴본적이 없었습니다.

 

단 한번도.

 

 

그녀의 집착은 따오기보다 더 심했지만, 우리의 태생 자체가 그러했기에, 썬의 집착이 괴롭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날 붙잡아 주는 이 사람에게 종속되고 있음에 더 행복해 하는 나는 마조히즘.

 

 

 

 

 

 

 

 

 

 

시간이 흘러 우리는 20대의 중반을 넘어서고 있었습니다.

 

중간에 많은 사건이 있었지만 가장 중대한 사건, 시련이 그동안의 모든 상처를 희석시키고 모든 단련을 한방에 부숴버릴만큼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채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졸업 후 저도 운이 좋아 꽤 괜찮은 회사에 취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찌보면 썬의 도움이 컸다고 해야겠네요.

그저 술마시고 놀 때 놀고 학점관리 대충 하고… 아무런 목적의식 없이 살 뻔한 나의 대학생활을

그래도 늘 자신의 레벨까지 치고 올라와서 자기를 완전히 가져달라고 하던 썬의 채찍질에 부던히도 노력을 하지 않았었다면 과연 오늘의 내가 있었을까 할 정도로 그녀의 도움은 컸습니다.

 

 

우린 몇 년의 시간이 흐른 현재에도 변함없이 하루 열 번 이상 통화를 하고 사랑을 고백하고

서로의 일에 지장이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연인의 사랑을 나누고 또 나눴습니다.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은 우리에겐 이해 할 수 없는 게으른자들의 변명으로만 들릴만큼.

 

 

 

아. 그녀는 술을 끊은지 3년이 넘었습니다 ㅋㅋ

 

그 사람이 비행기를 타고 떠나던 날 마지막으로 맥주잔에 소주 5병을 털어 넣은 이후로 단 한차례의 술도 마시지 않았죠.

 

 

 

단풍이 길거리를 융단처럼 덮은 가을 어느 날.

 

썬이 나에게 말합니다.

 

 

“ 자기야. 나 자기 애 낳고 싶어. “

 

 

 

---------------------------------------------

 

 

퇴근합니다!!!

 

 

약속도 있는데 늦었네요 ㅠ 7시 약속이라 ㄷㄷㄷㄷㄷ

 

내일 이어갑니다~~

 

 

 

“ 성배란? “

 

“ 예수님의 주스컵 “

 

“ 뜬금없이 종교얘기는 왜? “

 

“ 너 그 영화 봤구나? “

 

“ 응. 피셔킹이었지? “

 

“ 나도 그 대사가 가장 와닿았었어. “

 

 

 

 

 

탄탄대로를 달리던 방송인이 모든 것을 버리고 센트럴파크에서 노숙자로 살아가는 이야기.

 

불의마왕이 자기를 죽이러 찾아올거라는 망상에 함몰되어 늘 불안해 하는 한 남자.

 

 

 

 

 

 

 

썬과의 사랑은 격렬한 전투 같았습니다.

 

늘 새롭고 늘 사랑스럽고 늘 행복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지나치게 자주 다퉜습니다.

 

아주 사소한. 가령 새벽 4시까지 야근을 하고 피곤에 쩔어 잠들어 있는 나에게

 

왜 아침 6시에 전화해서 사랑한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화내는 썬.

 

무조건 그 약속은 지켜야만 한다고.

 

 

 

 

물리적으로, 혹은 불가항력으로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대해서도

 

예외를 인정하지 않는 지나친 강요와 구속.

 

 

 

 

만에 하나 그 약속을 하루라도 어기는 날이면 그게 “ 날 사랑하지 않는 “ 것으로 결론 내 버리는 썬.

 

그에 비해 내가 썬에게 확인 받는 사랑의 횟수는 지나치게 적었습니다.

 

 

 

 

 

 

불의 마왕이 나를 찾아 오는 날.

 

 

 

나의 사랑과 그녀의 사랑과 우리 둘의 사랑을 산산히 부숴버릴

 

불의 마왕이 찾아 올까봐 불안해 하는 치토스.

 

 

이토록 서로를 사랑하고 간절하게 원하는데, 그리고 이렇게 뜨겁게 사랑하고 있는데

 

 

왜 이런 쓸데 없는  걱정을 하며 살고 있는 것일까요.

 

 

 

 

 

 

 

 

“ 정말 내 애기 낳고 싶어? “

 

“ 응 자기 똑닮은 아기 낳고 싶어. 되게 이쁠꺼 아냐. “

 

“ 널 닮아야 이쁘지. 세상에서 너가 제일 이쁘대매? “

 

“ 나야 원래 이쁜거고 나 닮으면 나보다 못났을꺼 아냐. 그러니까 자기 닮아야 돼. ㅋㅋ ”

 

 

 

 

 

 

썬과의 결혼을 당연히 꿈꾸고 있는 나였지만 아직은 썬과의 레벨에

 

한참 못미치는 경제력에 비관하고 있었는데 말만이라도 얼마나 고맙던지요.

 

그리고 썬의 말이 진심임을 아니까요.

 

 

 

 

“ 애기 낳는건 원한다고 무조건 되는게 아니잖아? “

 

“ 그지… 애 못낳는 사람들도 의외로 많대. “

 

“ 그러니까 우린 연습을 더 해야 해. ㅋㅋ “

 

“ 저질…. “

 

 

 

 

 

그 날 밤 우린 어른놀이를 했습니다.

 

썬과의 어른놀이는 이미 권태기가 백 번은 오고도 남을만큼 긴 연애기간이 지났음에도 늘 달콤했습니다.

 

 

 

 

 

다음 날.

 

“ 자기야 오늘은 회식이 있어서 못 볼꺼야. 나중에 퇴근할 때 전화할께. “

 

 

 

별다른 약속도 없는 평일 오후, 썬도 못만나는 날이라 칼퇴근 후

 

지하철역으로 걸어가며 썬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 어째 조용하네? 아직 회식 안갔나봐? “

 

“ 응 잠깐 있다가 나갈꺼같애. “

 

 

 

그 때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

 

무슨 말을 한건지는 모르지만 그녀의 언니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 회사에 있어야 할 애가 이 시간에 집엔 왜 간거지? ‘

 

 

 

“ 지금 집이야? “

 

“ 아 아니 회사야. “

 

“ 언니 목소리 아니었어? 지금? “

 

“ 아닌데? 여기 사무실이야. “

 

“ 응 알았어. 암튼 회식 잘하고 나중에 전화해. “

 

“ 응 사랑해~ “

 

 

 

 

 

썬과 사귀기 시작하면서 주변 친구들과는 자연스레 만남이 뜸해졌습니다.

 

워낙 자기에게만 집중해 주길 바라는 썬의 성격도 영향이 있었겠지만

 

그 보다는 제가 썬을 너무 보고 싶어해서, 보고 있어도 보고 싶다는

 

무슨 노래가사처럼, 실제로 1분 1초가 아까울만큼 너무나 그리운 썬이라

 

친구들과의 만남을 나날이 줄어들 수 밖에 없었습니다.

 

뭐 그래도 간간히 모임에도 나가고 친구들과의 관계를

 

이어나가고 있었지만 썬 이전의 관계는 아니었죠.

 

 

 

 

 

썬을 못만나는 날이면 하릴없이 집에 들어가 컴퓨터를 하든 책을 읽든,

 

거의 대부분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물론 전화통화는 1시간에 한 번 이상은 꼭 하면서.

 

 

 

 

 

 

 

 

 

 

< 나는 미치도록 여자들을 사랑했노라. 하지만 자유를 더 사랑했노라. >

 

 

 

썬의 집착에 이미 적응한 나.

 

이젠 집착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나.

 

오로지 썬의 집착에 의해서만 살아가고 썬의 사랑 안에서만

 

숨 쉴 수 있게 되어버린 물고기 같은 나.

 

 

 

 

그 집착에 행복 해 하면서도 역설적으로 난 자유를 꿈꾸고 있었나 봅니다.

 

넌센스죠.

 

 

 

 

 

오랜만에 침대에 누워 책을 읽다가 문득 시계를 보니, ‘ 아뿔사! 전화해야지! ‘

 

왁자한 술집 소리가 귓전을 울립니다.

 

“ 재미있어? “

 

“ 응~ “

 

“ 설마 술은 안마시겠지? “

 

“ 끊은거 알잖아. 모 새삼스럽게 물어? “

 

“ 마시기만 해봐 아주!! “

 

“ 알았다고요~~ 나중에 전화할께. 지금 회식 중이라 통화 어려워 끝나면 내가 전화할 테니까 그렇게 알아. “

 

“ 응. 사랑해. “

 

“ 그래. “

 

 

 

 

 

그래..

 

 

그래….

 

 

 

‘ 사랑해 가 아니고? ‘

 

 

 

썬의 회사 동료들도 나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워낙 씨끄럽고(ㅋ) 염장 커플이라 서로의 주변 사람들이

 

우리 둘을 모른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죠.

 

 

‘ 사랑한다는 말 할 수 있지 않았나? ‘

 

 

 

썬보다 사랑의 표현을 더 많이 해 온 나로써, 이따금씩

 

 

이런 사소한 일이 서운 할 때가 있었습니다.

 

 

‘ 나도 너만큼 표현을 받고 싶다고. 특히 오늘처럼 만나지 못하는 날에는 더더욱. ‘

 

 

 

 

 

 

 

 

 

 

자정이 지나도 핸드폰은 울리지 않았습니다.

 

 

새벽 1시가 지나도 핸드폰은 내려 놓은 그 자리에서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핸드폰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2시간 째 미동도 하지 않고

 

불의 마왕의 환영에 둘러 쌓여 불안 해 하는 한 남자도 죽은 듯, 죽을 듯한 고통에 괴로워 하고 있습니다.

 

 

 

 

 

 

 

 

 

 

 

 

 

불의 마왕이 나에게 찾아 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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