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꾼 - 인생의 희노애락을 담다

페스카마호 선상 살인사건

1996년 6월 3일 온두라스 국적의 선적 참치잡이 원양어선 페스카마(PESCA MAR) 15호에서 중국 조선족 선원들에 의해 벌어진 선상 반란으로 한국인, 인도네시아인 선원들이 살해당한 사건이다.
당시 전국적으로 이슈가 되었으며 국내에서는 여전히 남아있는 원양어선 내에서 벌어진 가혹행위의 실상이 알려지는 계기가 된 사건이다. 이 사건이 국내에 알려지자, 페스카마 호가 한국으로 입항하기 전부터 초미의 관심사였다. 당시 변호사였던 문재인 변호사가 변호하여 1심에서 사형이었던 형이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사건으로 유명하다.

들어가기 앞서 페스카마호 선상 살인 사건은 조선족 6명이 한국인을 포함한 11명을 살해한 사건이다. 시신은 바다에 버려져 1 구도 찾지 못했다.

조선족들 조업거부

도무지 힘들어서 못 먹겠어.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중노동..
아무리 돈도 좋지만은 이러다간 완료되기 전에 골병들어 죽겠다... 맞아
조선족들은 수차례 조업거부를 했다. 월급제라 받는 돈은 똑같으니 시간만 때우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선장 : 뱃놈이 배멀미를 한다는 게 말이 되나?
조선족들은 매일 한 두 명은 교대로 조업을 거부하고 침대에서 휴식을 취했다.
명령을 내리면 이를 거부하고 항상 칼을 들고 다녔다.

인도네시아 선원들의 협조로 가까스로 이어지는 조업

매사에 호전적이며 여차하면 한국 선원들에게 기어오르는 조선족에 비해 인도네시아 인들은 한국 선원들의 짜증도 감수하면서 묵묵히 일해주었다. 그런 인도네시아인들의 협조가 있었기에 빡빡한 작업 스케줄은 그때그때마다 적절히 넘어갈 수 있었다. 조선족들과 다르게 인도네시아인들은 묵묵히 일해주었다.

인도네시아 선원들의 불만 폭발

그런데 자네들마저 이러면 안 되지. 우린 어떻게 하란 말인가?
우린 개돼지가 아닙니다. 조선족은 놀고먹고 반둥거려도 아무 말 않고, 묵묵히 일하는 우리만 닦달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그렇소. 우린 돌아가겠습니다.

더 이상 이 배에 남아있을 필요가 없다고요.
조선족들의 계속되는 업무태만과 명령 불복종 그리고 놀고 있는 모습에 인도네시아 집단은 불만을 터트리게 된다.

선장의 조선족 하선 결정

서.. 선장님. 아 안됩니다!!
철수함으로 해서 오는 엄청난 손실을 과연 어떻게 감당하시려고요?
손실은 내가 책임진다. 신속히 조선족 전원 하선 조치를 결정할 것이다.
조선족들의 조업거부가 계속되자 선장은 그들을 하선시키기로 결정한다. 사모아 항에는 대체할 다른 선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배를 타기 전에 만약의 사고나 손실을 대비하기 위해 송출회사에 보증금 5만 원을 맡겼다. 중국돈 5만 원은 우리 돈으로 5백만 원쯤이며 중국 근로자 한 달 월급이 5백 원인 그쪽 사정을 볼 때한 푼도 안 쓰고 10년을 죽기 살기로 모아야 할 거금이다. 시간만 때우고 집에 갈 생각이었던 이들에게는 충격이었다. 보증금을 빚으로 탑승한 조선족들에게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조선족들의 선상 반란

집단자살이 어렵다면, 그다음 방법은 하나. 한국 놈들을 쓸어 버리고 한국이나 일본으로 밀항하는 거다
한국인들의 집단 몰살?! 결국 조선족들은 한국인 선원 살해 계획을 세운다.
무슨 짓인가? 이놈들!!

1번째 희생자 최기택 선장

작두칼은 정확히 선장 하복부의 작은 창자를 후비고 관통됐다.
최초의 희생자 최기택 선장. 그는 제대로 저항 한번 해보지 못하고, 집중 살해 당했다.
최기택 선장(33세)

2번째 희생자 강인호 냉동사

도끼를 맞은 강 씨의 목이 떨어질 듯 덜덜 했다고 현장 검증에서 최일규는 증언했다.
강인호 냉동사 (33세)

죽으려고 환장했어?
그가 악을 쓰자 당황한 조선족들이 몰려들어 일제히 그의 몸을 난도질했다. 그의 비명소리가 어선 전체를 진동시켰다.
그러나 기관 소리가 큰 데다가 낮의 고된 작업으로 곯아떨어진 선원들은 이 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리고 그는 차기운 바다로 던져졌다.

3번째 희생자 박종승 전기사

결혼도 못한 채 총각의 몸으로 수장. 박종승 전기사 (32)

4번째 희생자 김창열 기관원

김창열 씨는 전 씨가 호출한 조타실을 곧바로 들어가지 않고 자뭇 경계스러운 눈치로 안을 살피고 있었다. 조타실이 너무 어두웠다. 그건 평상시의 조타실 조명이 아니었다.
무슨 일이 있는 거야? 이건 정상이 아니다라는 것을 직감했다. 위기를 직감하고 몸을 돌리려는 순간 통로에 숨어 있던 최일규의 칼날이 김창열의 옆구리를 후비고 들어 왔다. 순간 여기저기 숨어 있던 조선족 4명이 일제히 김 씨에 달려들어 마구 찔렀다. 그렇게 무수하게 칼을 맞고도 이 새끼가 아직 살아 있잤습네. 사 살려줘. 지독하게 질긴 놈 아님?! 난간을 잡은 손을 찍어버려! 제 제발. 뭐야 이 간나새끼. 그렇게 칼을 맞고도 그래도 죽기 살기로 난간을 잡고 있잖아.
부탁이야.. 저리 비켜. 도끼로 그의 팔을 끊었다. 악착같이 살아 보겠다고 처절하게 난간을 잡고 있던 김창열 기관원 그도 그렇게 죽어갔다.

5번째 희생자 서장주 조리사

시간이 갈수록 살기는 오히려 등등해졌고 뜨거운 열기로 팽창 되어갔다. 다음은 조리사 서장주 그 역시 자다가 전 씨의 호출을 받고 조타실로 갔다. 그는 난자당한 배를 웅켜잡고 난간 쪽으로 도망쳤다. 5kg이 넘는 쇠뭉치가 그의 머리를 일격에 부쉈다. 그리고 그 역시 바다로 이내 내던져졌고... 바다로 떨어지는 서 씨의 머리는 없었다.

6번째 희생자 김신일 기관장

그들은 계속 조타실로 잠자는 한국 선원들을 유인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이 이러지들 마... 기관장 김신일 씨도 그렇게 죽어갔다.

7번째 희생자 최동호 군

포항수산고를 졸업하고 지난해 10월 실습생으로 포항을 떠났다. 어머니 아버지, 뱃일이 좀 힘들기는 하지만 남자다움을 배울 수 있어 좋습니다. 형님도 군에 가고 없어 적적 하실 텐데 고아원에서 딸이라도 하나 입양해 키우십시오. 잘하면 추석 때 찾아뵈올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인도인들을 선상 반란에 동조하도록 협박

산채로 꼬마를 바다에 던질 수 있겠는가? 만약 그래 줄 수 있다면 우리는 인도인을 동지로 생각하겠네. 3초 안으로 선택하십니다. 이자들은 우리 조차 살인에 가담 공범으로 만들려 하고 있는 거야. 살려줘요.. 제발 살려주세요!!
뭘 우물거리는 건가? 산채로 바다에 던지란 말이야!
3명의 인도인들은 어쩔 수 없었다. 거역하면 그들조차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했기 때문이다. 어린 최동호 군은 맹장이 터져 육지로 향하던 배를 찾던 중 다른 배에서 페스카마호로 옮겨 탄지 6시간 만에 아무 이유 없이 산체로 바다에 수장됐다.

괘씸죄에 걸린 조선족 최만봉과 증인을 한 사람이라도 없애야 된다는 논리에 의해 그들은 그렇게 냉동 살인의 대상물이 된 것이다. 살은 순식간에 굳어만 갔고 모든 것은 그렇게 절망적으로 결정지어져 갔다. 냉동창고에 가뒀던 조선족 1명과 인도네시아 3명이 살아있자... 몽둥이로 재무장한 조선족 선원들은 최 씨와 인도네시아 선원 3명을 즉석에서 때려죽이는 만행을 보였다. 단말마의 비명 소리가 이인석씨가 있는 항해실까지 찢어질 듯 들려왔다. 그들은 그렇게 죽어갔다.
결국 나머지 4명도 몽둥이로 때려죽였다.

이렇게 해서 8월 2일 새벽 3시를 가해 개시된 선상 살인은 8월 6일 오후 8시를 기해서 한국 선원 7명. 중국 조선족 1명.. 인도네시아 선원 3명 등 모두 11명이 참살당했다. 희생자는 총 11명

항해사와 인도인들은 조선족들을 창고에 가둬버림

인도네시아 선원 아삭 씨(29)는 순간적으로 그것이 무엇을 말하는지를 직감했다. 그들은 서두르라는 최종 마무리 사인을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밀입국하려는 일본과 가까워지자 죽을 시간이 다가오게 된 1등 항해사 이인석과 인도네시아 선원들은 조선족들을 창고에 가둬버린다.

재판

피고인들은 전부 중국 국적을 가지고 있었고, 선박은 온두라스 선적이었으며, 피해자들은 대한민국, 중국, 인도네시아 국적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한국 법원에 재판권이 있는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되었으나, 검찰은 보호주의를 적용하여 한국 형법 등을 적용, 해상강도살인, 사체유기,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기소하였다. 6명 모두 1심에서는 사형이 선고됐으나, 2심에서는 문재인 변호사가 변호를 맡았으며 전재천을 제외한 나머지는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 1997년 7월 25일, 대법원에서는 피고인들의 항소를 기각하고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 판결문 전재천은 이후 주동자가 아니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는데, 2007년 노무현 대통령 특사로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고, 여섯 명 모두 지금도 무기수의 신분으로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인도네시아 선원들 중 실습생 살인에 연관된 3명에 대해서 수사한 검찰은 이들을 불구속 상태로 수사하였으나 이들이 조선족 선원들의 강압을 거부할 경우 본인의 생명을 구할 수 없는 상황이었음을 인정하여 형법 제12조를 적용해 불기소 처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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